11월15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맨 왼쪽)과 중국 시진핑 주석(영상) 간 첫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REUTERS

“경쟁 관리 차원이었다.”

11월15일(미국 워싱턴 시각), 영상으로 이루어진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 간의 첫 정상회담은 그렇게 요약됐다. 공동성명 없이 3시간30분에 걸쳐 이루어진 회담 이후 미·중 양국 모두 만족스러운 회담으로 자평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어떤 합의를 도출하기보다 대화 자체만 이뤄져도 성과인 것으로 양국 정부가 기대했기 때문일 터이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중국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리라 짐작하긴 어려웠다. 최근엔 실제로 전운까지 감돌았다. 지난 10월 초, 타이완해협에 중국 전투기가 출몰했다. 이에 맞서 미국과 영국, 일본 항공모함이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같은 달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무력화를 염두에 둔 듯 보이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해 미국을 경악하게 했다.

미·중 외교는 그 이전부터 이미 ‘파투 난’ 형국이었다. 지난 3월 미·중 알래스카 회담에서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했다. 이에 양제츠 중국 중앙외사업무위원회판공실 주임은 “미국에선 흑인들이 학살당하고 있지 않느냐”라며 ‘미국 너희나 잘하라’고 몰아붙였다. 양국 외교사의 충격으로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이날의 미·중 ‘난타전’ 이후 중국이 미국에 보낸 메시지는 ‘미국 측이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를 폐기하고 타이완·홍콩·남중국해 관련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보장한 다음에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될 수 있었을까.

바이든이 당선됐을 때 중국은 미국이 트럼프의 대(對)중국 관세 정책을 철폐하고 트럼프 행정부 말까지 악화일로였던 양국 관계를 예전으로 되돌릴 것을 기대했다. 지난 9월9일 미·중 정상 간 전화 통화에서 시진핑은 트럼프 정책을 폐기하지 않은 바이든을 성토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국 차관보는 미·중 정상회담 직후 〈포린 어페어스〉에 실은 기고문에서 오바마 정부 시절 바이든-시진핑의 친밀했던 관계를 환기시켰다. 시진핑이 바이든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실망과 악감정을 억누르고 미·중 정상회담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든 역시 과거 부통령 시절 ‘각종 국제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진핑과 1만7000마일(약 2만7360㎞)을 함께 다니며 24~25시간에 걸친 개인 회담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어떤 세계 지도자들보다 바이든 본인이 시진핑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그만큼 시진핑에 대해 ‘잘 알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폭스뉴스 등은 ‘바이든의 허풍’이라고 몰아붙였지만, 실제로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이 바이든을 ‘오랜 친구’라고 부르자 바이든은 ‘고맙다’고 화답하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11월15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음식점의 대형 TV에서 미·중 정상회담 뉴스가 나오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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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오랜 친구’들이 정상회담에서 구사한 화법은 그리 친밀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직설적으로 자국의 관심사를 털어놓았다.

바이든은 이날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및 티베트 인권 문제, 홍콩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중국을 규범적으로 압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바이든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고 발언하긴 했으나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행동을 두고 노골적으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은, 1979년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가 시작했다. 카터 행정부는 중국 본토의 정부를 ‘유일한 중국 정부’라고 승인하면서 타이완과는 국교를 단절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미국 의회는 ‘타이완 관계법(TRA)’을 통과시킴으로써, 미국과 타이완 사이에 공식적 ‘국교’는 없지만 비공식적 관계는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모호한 상태를 합법화했다. 이 법률에 따라 미국은 국교 단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타이완과 경제·문화·군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이 타이완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도 합법이다.

이 같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선 승리 직후인 2017년 2월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통화하면서 1979년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의 관행을 깼다. 이 기간엔 미국 정부가 타이완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으므로 양측 지도자 사이에 전화 통화가 이뤄질 이유도 없었다. 당시 시진핑은 미국이 타이완에 대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또한 중국은 타이완과 평화적인 ‘통일’을 추구하고 있지만 ‘타이완 독립’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로 규정했다. 2000년대 초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는 이익 상관자(responsible stakeholder)’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초강대국 간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이 시작되었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중국 외교부는 미·중 수교 40주년이던 2019년, 미·중 관계에 대해 ‘합즉양리 투즉구상(合則兩利 鬪則俱傷:화합하면 양쪽 모두 이로울 것이나 싸우면 모두 다친다)’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10월 중국 상품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 경쟁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사실상 선포한 직후였다.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허드슨 연구소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환기시키며,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양태를 조목조목 읊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동안 중국과 ‘관세 높이기’ 경쟁을 벌이다가 2019년부터는 중국에 대한 미국산 첨단 부품 수출을 통제하는 등 ‘중국의 글로벌 기술 패권 탈취’ 시도를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9년 11월28일 홍콩 에든버러 광장에서 시위대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AP Photo

이후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무역과 산업 부문을 넘어 인권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2019년 11월27일 트럼프는 홍콩 시위대 지지 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집권 말기까지 중국에 대한 압박의 끈을 놓지 않았다. 중국을 ‘오늘날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 부르며 SMIC 등 중국 기업 수십 개를 ‘무역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중국 공산당원 9000만명에 대한 미국 입국비자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트럼프는 집권 마지막 날, 세계 최초로 중국의 위구르족 학대를 집단학살로 선언했다. 바이든 역시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대량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시진핑과의 첫 통화에서 위구르족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또한 집권 이후에도 중국 측의 기대와는 반대로 나아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15일의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그 성과는 어떠했을까?

더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날 정상회담이 그동안 미·중 관계 악화의 돌파구를 열지는 못했지만, 경쟁이 재앙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한 양국의 협력 용의를 보여줬다고 해석한다.

바이든은 이날 개회사에서 “중국과 미국의 지도자로서 우리의 책임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양국 간의 경쟁이 충돌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서 명확하고 정직하게 상식이 통하는 가드레일을 설정해야 하며 우리의 이익이 교차하는 부분에서는 함께 일해야 한다”라며 협력을 강조했다. 시진핑도 “중국과 미국은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윈윈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 학자 웬티 성은 “이번 정상회담의 목적은 양국의 경쟁이 재앙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뢰 구축 조치”라고 풀이했다. 양국 정상이 긴장된 미·중 관계를 좀 더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반가운 신호라는 이야기다. 양측이 기후 문제 및 국제적 에너지 공급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동안 미·중 관계가 더 진전되기는 어려우리라고 전망한다. 바이든은 초당적으로 중국을 향한 적대감이 팽배한 정치 환경에서 내년 중간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과의 협력이, 적어도 내년 중간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바이든도 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화당은 바이든-시진핑 회담에 대해 ‘성과가 없다’고 폄하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 정책을 이어나가고 있는 데 대해 지지하는 입장이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압박 정책과 코로나19 팬데믹에 중국을 적응시켰다. 최근엔 중국공산당 100년 역사에서 세 번째 ‘역사 결의’로 장기 집권의 기초를 닦았다. 이 역사 결의에서 중국공산당은 이른바 ‘시진핑 사상’을 “당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중화문화와 중국 정신의 시대적 정수로 마르크스주의 중국화의 새로운 도약을 이뤄냈다”라고 극찬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할 일은 대외적 강경 발언으로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이란 점을 보여주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미·중 정상은 국제사회와 자국민들에게 이제 ‘최소한 해야 할 일은 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회담 직후 백악관 관리들은 “오랜 친구”라는 시진핑의 발언이 마음에 걸렸는지 “바이든은 시진핑을 (1만7000마일 여행으로) 잘 안다고 했지 친구라고 부른 적은 없다”라며 굳이 성명서를 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산국가’ 지도자와 친분을 강조해서는 안 되는 바이든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기자명 양수연 (재미 언론인·월든 코리아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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