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학교에 와서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대자보’ 문화였다. 간디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공론화하고 싶을 때 벽에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을 많이 활용해왔다. 상상이 되는가? 고등학교 복도에 각자의 생각을 담은 여러 대자보가 붙어 있는 모습이.
요즘에는 대학에서도 대자보를 구경하기 힘들다. 실제로 얼마 전 들렀던 한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퍽 낯설었다. 학교나 사회를 향해 날이 선 주장을 담은 대자보 대신 영어나 자격증 학원 광고, 공모전 안내 광고로 벽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던 시절, 인권침해 신고를 받고 종종 학교에 나갔다.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몇 가지 사건이 있다. 그중 하나는 양말 색깔까지 규제하는 엄격한 학칙이 문제가 된 곳이었다. 신고된 학교의 학칙은 대부분 학생인권조례에 위배되었다. 사안 자체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인상적인 것은 학생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인권침해에 대해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항의를 했다.
학교 관리자는 별일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이 모든 것은 오해이며, 곧 사회에 나갈 학생들의 몸가짐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일 뿐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은 이에 대해 불만이 없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렇다면 저기에 붙어 있는 대자보는 어떻게 된 건가요?” “아, 그건 다 허가받지 않은 거라서 보이는 족족 떼고 있습니다. 만약에 학생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학교 안의 절차를 이용해서 해결해야죠. 저렇게 대뜸 대자보를 붙이거나 이렇게 교육청에 신고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학생은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7조 제1항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학생의 인권침해에 대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학교를 상대로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왜 학생은 교무실로 찾아가 학칙의 이런 부분이 학생인권조례에 위반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대자보를 붙여야 했을까?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어놓고는 목소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부당함을 온전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한가
간디학교의 대자보 중에는 교사를 향한 것도 있다. 교사의 공식적인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공동체를 위한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학교에 스며든 혐오 문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교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이 익명으로 대자보에 실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왜 ‘대자보’냐, 왜 ‘익명’이냐가 아니었다. 공동체의 문제를 용기 있게 말해줄 구성원이 있다는 사실과 그 구성원이 마음 놓고 자신의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두지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던 이 공간도 사실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대자보를 읽고 간디 교사회는 공식적인 사과문을 대자보로 게시했다.
학교는 학생에게 어떤 공간일까. 학생이 자신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온전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한 곳일까, 아니면 그 말 한마디에 수많은 무게를 짊어져야만 하는 곳일까. 우리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공간이 될 수는 없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찾는 길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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