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2월 초,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중학교 배정통지서를 받으러 곧 졸업할 6학년 교실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설렜을까? 친구들과 “넌 어느 학교 갈 거 같아?” “넌 어디 가고 싶어?” “어디든 너랑 같은 학교 가면 좋겠다” 수다를 떨며 담임선생님을 기다렸으리라. 그러다가 선생님이 들어와서 배정통지서를 한 명씩, 한 장씩 나누어주셨을 테지. 누구는 “아싸~!” 그러고, 누구는 실망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그렇게 모두에게 배정통지서가 돌아가면 담임선생님은 오늘부터 2~3일간 배정받은 중학교에 가서 배정 등록을 하라며 중학교에서 알려주는 안내 사항을 꼼꼼히 잘 챙기라고,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들의 뒷모습을 배웅했을 것이다.

흔히 중학교 2학년이 가장 강렬한 사춘기의 검은 아우라를 뿜는 시기라고, 열다섯 살 중2 남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시대의 과제이자 역사의 소명인 양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중1도 만만치 않다. 100번 같은 말을 해줘도 그런 말 처음 듣는다고 어찌나 우기는지 칠판에 큰 글자로 또박또박 적어줘야 한다. 수업 중 교실을 돌아다니는 일도 있다. 어떤 학생이 말없이 교실 밖으로 나가기에 “자네, 수업 중에 어디 가나?” 하고 물으니 별일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화장실 가는데요?”라고 말해서 웃었던 적도 있다.

남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성적인 농담을 많이 하는데 중2나 중3 정도 되면 그나마 말을 가려서 한다. 하지만 중1은 소위 ‘할말못할말못가림’ 증상이 좀 있는 편이다. 천진하고 귀여운 얼굴로 야한 농담과 ‘패드립(패륜적 말)’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중1 남학생을 상상해보시라.

하여간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세상물정 몰라서 더 무서운 중1이 지난 3월 입학을 했다. 아직은 한없는 호기심과 젖살 보송한 귀여움을 시전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학기가 지나면 몇몇은 다투다가 교무실에 불려올 거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긴장감이 풀어져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다가 다정한 선생님을 만나 두 손 맞잡힌 채 바른 몸가짐에 대한 설교도 들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괜히 넘어지고 다치고 싸우는 녀석들이 보건실을 들락거릴 것이다. 급식실 앞의 길고 긴 줄 사이로 슬쩍 새치기를 시도하다 친구들에게 집중적인 지청구를 들으면서 눈치와 양심과 체면의 사회학을 온몸으로 익힐 것이다.

고함도 지르고 별일 아닌데 눈물도 흘리다가

처음에는 바른 자세로 앉아 나름 열심히 공부도 해보지만 형들이 중간고사를 볼 때쯤 자유학년제 체험활동을 나가노라고 마음이 들뜨다 보면 어느 새 공부고 뭐고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봄날이 지나고 점점 키가 자라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도 불쑥불쑥 솟구치고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면 괜한 화가 터지기도 할 거다. 그렇게 중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다가 11월쯤 되면 어렵기만 하던 선생님들이 좀 만만하고 지겨워진다. 수업 시간에 삐딱하게 앉아도 보고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괜히 반항도 해본다. “너희 요즘 왜 그래?” 그러면 그중 좀 어른스러운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이해하세요, 저희가 요즘 사춘기거든요.” 그러다 중2 올라가는 2월이 되면, “아, 이제부터는 일 년에 시험을 네 번이나 본대.” 한숨을 쉬면서 공부 열심히 할 결심도 한 3초쯤 먹어볼 것이다.

올해는 정말 이런 ‘정상적인’ 중1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축구공을 뻥뻥 차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급식실로 뛰어가면서, 때로는 고함도 지르고 별일 아닌데도 눈물 흘리다가, 히히 웃고 친해졌다 싸웠다 혼났다 칭찬도 들었다 하면서, 그러면서 커가는 ‘하찮지만 알차고 슬기로운 중1 생활’을 마스크를 쓰고라도 누리기를, 맘껏 누리기를 바라본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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