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8월11일 반중 매체인 〈빈과일보〉는 1면에 지미 라이 회장 체포 사진과 함께 “〈빈과일보〉는 계속 싸우겠다”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The news is the first rough draft of history).’ 1971년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과정을 그린 영화 〈더 포스트(The Post)〉에서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이 편집국장에게 하는 대사다.

기자가 기록한 뉴스들이 하나하나 모여 역사를 이룬다. 이러한 뉴스의 역할이 최근 홍콩에서는 위기에 놓였다. 8월11일 홍콩 반중 매체인 〈빈과일보〉 1면에는 창업주인 지미 라이 회장이 수갑이 채워진 채 찍힌 사진이 실렸다. 홍콩 경찰이 라이 회장과 최고경영자 등 총 10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 매체는 사진 아래 1면 기사 헤드라인으로 이렇게 밝혔다. “〈빈과일보〉는 계속 싸우겠다(We shall fight on).”

하루 전인 8월10일 오전 경찰 200여 명이 〈빈과일보〉 본사를 급습해 4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빈과일보〉 기자들은 몹시 당황한 기색으로 핸드폰을 들고 압수수색 과정을 생중계했다. 같은 날 저녁, 2014년 우산혁명을 주도한 젊은 정치인 아그네스 초우가 체포되었다는 소식도 나왔다. 잇따른 반중 인사들의 체포 소식에 일각에서는 민주 진영에 대한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8월7일 미국 재무부가 홍콩 자치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등 홍콩과 중국의 고위 정치인 11명에게 금융 제재를 가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성 행동이라는 것이다.

올해 7월1일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된 후 ‘외부 세력의 대리인’으로 간주되던 지미 라이 회장에게 관심이 줄곧 쏠렸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 결탁 등 4가지 범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하도록 한다.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 창업자인 그는 1990년 주간지 〈넥스트 매거진〉, 1995년 일간지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반중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빈과일보〉라는 반중 성향 매체를 운영해오면서 국가보안법의 ‘1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라이 회장은 홍콩을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라이 회장은 체포 40여 시간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미 라이 회장이 체포된 것을 두고 일부 친중파 세력은 환호했다. 홍콩 시민들은 〈빈과일보〉 구독운동을 이어나갔다.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 신문을 사려고 새벽부터 편의점 앞에 대기한 시민들이 긴 줄을 이룰 정도였다. 신문을 구매한 이들은 인증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렸다. 심지어 편의점에 비치된 〈빈과일보〉를 모조리 구매해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도 있었다. 평소 인쇄량이 7만 부 정도이던 발행부수는 8월11일 당일 55만 부로 크게 늘었다.

시민들이 구매운동까지 벌인 이유는 이 신문이 홍콩에서 언론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주도 크기만 한 홍콩에 주요 신문사 13개, 방송사(TV·라디오) 6개가 있다. 물론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이후 대안적인 인터넷 매체와 학생들이 만든 매체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보면 홍콩 언론 역시 꽤 다양해 보인다. 그러나 매체들의 ‘성향’ 기준으로 보면, 대다수가 보수 성향(친중국공산당)이다. 진보 성향 신문사로는 〈빈과일보〉가 거의 유일하다. 그동안의 홍콩 민주화운동에서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온 곳도 이 신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빈과일보〉 판매량은 계속 떨어졌다. 정부의 눈 밖에 난 것이 판매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렁춘잉 전 행정장관은 지난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신문에 광고를 실은 상가 이름을 공개한 적이 있다. 반중 성향 매체에 대한 공격이었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빈과일보〉에 대한 정치적 박해가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엎어진 둥지에는 성한 알이 없다

이번에 홍콩 경찰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은 〈빈과일보〉 압수수색과 라이 회장 체포뿐만이 아니었다. 압수수색에 대해 경찰 브리핑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사만 경찰 저지선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방침을 세웠다. 공영방송인 홍콩라디오텔레비전방송사(RTHK)는 물론 AP통신, AFP통신 등 외신도 브리핑 참석을 제지당했다. 해당 언론사들이 이에 항의하자 경찰은 “과거 경찰 작전을 방해하지 않았던 신뢰할 수 있는” 매체만 취재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경찰총수인 크리스 탕 경무처장은 시험적인 조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경찰의 입맛대로 언론사 길들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부터 시민의 알 권리를 파괴했다는 비난까지 잇따랐다.

경찰의 이러한 태도는 지난해 송환법 시위가 지속되면서 악화된 경찰과 언론의 관계를 방증한다. 특히 송환법 시위 당시 인터넷 매체들이 눈에 띄게 많이 만들어졌다. 스마트폰만 들면 누구나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위 현장에는 주류 매체 외에도 학생 기자, 시민 기자들이 넘쳐났다. 이들은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신분이라 중립성을 지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때마다 경찰과 마찰이 빚어지곤 했다. 당시 경찰은 생중계 중인 사람들을 향해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지난 5월 경찰은 송환법 반대 집회를 취재 중인 기자 수십 명에게 취재 중단을 지시하며 무릎을 꿇게 하기도 했다. 홍콩기자협회는 이를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지 2개월, ‘엎어진 둥지에는 성한 알이 없다’는 말처럼 홍콩 언론의 위태로운 현실은 비단 〈빈과일보〉에 그치지 않는다.

홍콩 시민들의 신뢰를 받아온 방송사 케이블뉴스(Cable News)와 나우뉴스(Now News)에서 최근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 감행되었다. 나우뉴스는 친중파 출신을 국장으로 임명했다. 케이블뉴스는 국장을 바꿨다. 문제는 신임의 경력이 전임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언론계는 이번 인사이동으로 해당 언론사들의 논조가 보수화될 것을 우려한다.

공영방송 RTHK도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RTHK는 정부 산하기관이지만 정부 정책을 과감히 비판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두터운 신뢰를 얻어온 매체다. 하지만 올해 홍콩 방송통신부는 일부 RTHK 프로그램이 선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두 차례 경고를 내렸다. 지난 5월 RTHK의 대표적 정치 풍자 프로그램 〈헤드라이너(Headliner)〉는 홍콩 경찰을 풍자하는 내용을 내보낸 이후 방송통신부의 제재를 받고 결국 종영했다. 최근 홍콩 정부는 관료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들어 RTHK의 행정, 인사, 재무 상황을 직접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방송 내용을 직접 검열하지 않더라도 방송사 운영 전반을 쥐락펴락할 만한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1997년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한 뒤 ‘일국양제’를 보장받음으로써 홍콩에는 언론 자유의 공간이 생겼다. 이후 홍콩 언론인들은 ‘감시견’으로서 중국 본토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보도해왔다. 중국 정부가 언급을 금기시하는 톈안먼(천안문) 사건이 대표적이다. 매년 6월4일 무렵이면 홍콩 언론들이 톈안먼 사건의 희생자 가족, 목격자 등을 찾아 인터뷰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와 그의 아내 류샤 등 구금과 고문을 받은 중국인들의 삶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것도 홍콩 언론인들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인물들을 다시 취재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소지가 크다.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마다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언론인들의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 ‘역사의 초고’를 기록하는 뉴스의 역할이 홍콩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기자명 홍콩·관명린 (홍콩라디오텔레비전(RTHK) 에디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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