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톈안먼 사건 31주년을 맞은 6월4일 홍콩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타이밍 감각 하나는 기막힐 정도다. 코로나19 국면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숙원사업을 하나씩 강행 처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3일, 중국 해안경비대 함정이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에서 베트남 어선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다. 파라셀 군도는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한창인 지역이다. 지난 5월엔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두 차례나 충돌이 발생했다. 중국의 대외 강경 행보다. 코로나19 국면으로 인해 미국 항공모함 루스벨트호가 가동 정지 상태에 들어간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활동 공간을 넓히는 중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콩에서도 보안법 제정의 전조가 나타났었다. 지난 4월8일, 홍콩 민주당 창당자인 81세의 마틴 리 씨와 14명의 민주화 활동가가 체포되었다. 마틴 리 씨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체포되었다. 지난 1월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대표로 부임한 시진핑 주석의 측근 뤄후이닝은 마틴 리 체포 전부터 홍콩 보안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으로서는 5월로 연기된 전국인민대회(전인대)를 보안법 통과의 무대로 삼기 위한 치밀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을 터이다.

시진핑 정부 처지에서 홍콩 보안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오는 9월 홍콩 입법회 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의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85.2%의 지지율로 18개 구의회 중 17곳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9월의 입법회 선거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한다. 입법회 선거에서 예상되는 민주파의 압승은 시진핑 정부에겐 악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Xinhua홍콩 보안법이 통과된 13기 전국인민대회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는 끝났다?

시진핑 정부의 브레인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미국의 반응이었을 터이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 보안법을 강행하면 미국은 어떤 식으로 대응할까. 중국 측이 미국의 대응 시나리오를 사전에 면밀히 검토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들이 쏟아져나왔다. 시진핑 정부가 볼 때 미국의 가장 강력한 카드는 ‘홍콩정책법’이었다.

미국 의회는 1992년 홍콩정책법을 통과시켰다. 1997년으로 예정된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을 앞두고 관세·투자·무역·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차별적인 특혜를 홍콩에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조건은 홍콩에 ‘고도의 자치(중·영 공동선언에 규정)’, 즉 일국양제(一國兩制: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공존시키는 체제)의 보장이었다.

홍콩정책법 덕분에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은 최혜국 대우에 따라 무관세에 가까운 혜택을 얻었다. 홍콩인은 무비자로 미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홍콩 달러와 미국 달러의 교환이 원활해져서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중국 본토에 직수출이 불가능한 미국의 민감한 기술제품이 홍콩 기업에는 문제없이 공급되었다.

중국 본토 역시 홍콩정책법의 수혜자였다.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의 대부분은 중국 남부에서 생산된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미국이 홍콩정책법을 폐기하면 중국 본토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홍콩 보안법은 이 도시의 자치를 부정한다는 의미다. 일국양제 원칙이 사라진다. 미국에 홍콩정책법을 폐기할 명분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강행한 것은 나름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미국이 홍콩정책법을 폐기하면 중국의 피해보다 미국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미국과 홍콩 간 교역액은 669억 달러로 미국이 311억 달러 흑자를 거뒀다. 미국이 외국과 교역에서 거둔 흔치 않은 흑자다. 홍콩에는 미국 기업 1300여 개가 진출해 있다. 그중 300여 개는 아시아본부다. 3M,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존슨앤드존슨 등 굴지의 다국적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미국 입장에서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AP Photo1997년 7월1일 0시 홍콩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홍콩의 경제적 비중 역시 1997년 반환 당시 중국 GDP의 25%에서 최근엔 3%대까지 떨어졌다. 그동안 중국은 선전과 상하이 등을 홍콩의 대체지로 키워왔다. 선전은 교역 창구, 상하이는 금융창구로서 홍콩이 맡아왔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홍콩 보안법이 지난 5월28일 전인대를 통과한 이후 미국 측 반응을 보면 중국의 예상대로 전개되는 것 같다. 5월30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홍콩의 특별무역 지위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하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은 “거의 어떤 조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국 금융시장은 이 발표에도 조용했다”라고 논평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를 살해하면서 전국이 항의 시위 열풍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홍콩 보안법에 집중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미국이 코로나19와 국내 시위로 경황이 없는 틈에 오랜 숙원사업이던 홍콩 보안법을 밀어붙인 시진핑 정부와 브레인들의 승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홍콩 보안법의 당사자가 과연 미국인가. 미국은 물론 이해당사자다. 홍콩의 자치를 홍콩정책법 시행의 전제로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홍콩 보안법은 홍콩의 자치를 훼손한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딱 거기까지다. 미국은 당사자라기보다 조력자일 뿐이다.

홍콩 보안법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

당사자는 따로 있다. 덩샤오핑 시절인 1984년 자오쯔양 당시 중국 총리와 홍콩반환 협정을 타결하면서 중·영 공동선언에 합의한 영국이다. 영국은 이번 홍콩 보안법 통과에 즉각 항의하며 이민법을 개정해 약 300만명의 홍콩 시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취득할 길을 열어놓겠다고 치고 나왔다. 국제정치를 미국과 중국의 대항 관계로만 보는 시각에서는 영국의 갑작스러운 대응이 돌발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베이징 당국이 그동안 홍콩 보안법을 추진하면서 내심 그렸을 시뮬레이션에도 영국이라는 변수는 별로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국이 이번 보안법 국면의 핵심 포인트로 부상한 것이다.

일국양제의 출발점이 됐던 1984년 중·영 공동선언 당시의 정황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을 통해 당시의 청나라로부터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할양받았다. 1898년엔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배후지에 해당하는 신계지구까지 99년 기한으로 임차했다. 이렇게 오늘날 홍콩의 꼴이 갖춰졌다. 당시 신계지구 관련 협정문 말미에 ‘as good as forever (만고불변)’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홍콩 시내 중심가를 이루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영국이 영구히 할양받은 것이기 때문에 반환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99년이라는 임차 시한을 명시한 신계지구만이 반환협상 대상이었다. 1979년 머레이 맥리호스 홍콩 총독의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비공식 반환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이 본격화한 것은 마거릿 대처 정권 등장 이후인 1982년부터다.

ⓒAP Photo2019년 11월25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파 제임스 유 후보가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당시 영국 대처 정부는 신계지구를 15년 더 임차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미 베이징조약과 난징조약, 구룡·신계 조차조약 등을 무효화하고 승계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임차 기간 연장을 거부당한 영국은 ‘주권(sovereignty)’은 반환하되 ‘치권(administration)’은 행사하는 ‘마카오식(명·청 정부가 영토는 소유하되 포르투갈이 관할)’을 제안했다. 중국 정부는 주권과 치권은 나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대신 덩샤오핑이 영국을 회유할 목적으로 제안한 것이 바로 일국양제다. 반환 시점인 1997년부터 2047년 6월30일까지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자치를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영국은 당초 신계지구만을 반환협상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배후지인 신계지구를 반환하는 경우 시내 중심가인 홍콩섬과 구룡반도만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결국 영국은 덩샤오핑의 일국양제를 받는 대신 홍콩 전체의 반환을 결단하게 되었다.

영국에게 일국양제 약속은 넘겨줄 의무가 없었던 홍콩섬과 구룡반도까지 중국에 넘겨준 대가로 확보한 권리다. 영국은 중국이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참견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하루아침에 영국 시민에서 중국 국민으로 바뀐 홍콩 시민들에 대한 영국의 책무로 느낄지도 모른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킨 후 영국 조야에서 ‘홍콩 시민에 대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적·도덕적 의무’를 따지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시 영국과 중국의 협상장에서는 ‘중국이 일국양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영국은 전쟁까지 불사할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시진핑 정권 등장 이전만 해도 중국은 비교적 일국양제 약속을 지켜왔다. 그러나 시진핑 등장 이후 태도를 바꿨다. 급기야 홍콩 반환협정 20주년인 2017년 8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홍콩 반환협정은 이제 역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중·영 공동선언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영 공동선언에 뿌리를 둔 홍콩 기본법

홍콩 보안법 제정은 홍콩에 중국식 사회주의가 아닌 영국 통치 시절의 경제적 생활양식은 물론 입법·사법·행정 등에서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 일국양제의 기본 정신과 명확히 어긋난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일국양제의 종언이다.

1984년 12월19일 대처 영국 총리와 자오쯔양 중국 총리 사이에 체결된 중·영 공동선언은 제3장 ‘홍콩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본방침’이라는 장을 두고 있다. 그 제2절에서 ‘외교, 국방, 사무가 중앙인민정부 관할에 속하는 것 외에는 (홍콩은) 고도의 자치권을 향유한다’라면서 홍콩이 향유할 자치권의 내용을 나열했다. 3절엔 홍콩이 행정관리권, 입법권, 독립된 사법권 및 최종 심판권을 향유한다고 되어 있다. 5절에 따르면 홍콩의 사회경제제도는 물론 생활방식도 변하지 않는다. 또한 홍콩 특구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여행, 이주, 통신, 파업, 직업선택, 학술연구, 종교 등과 관련된 각종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홍콩 기본법(1990년 4월4일 제7기 전인대 3차회의 통과. 1997년 7월1일 시행)은 중·영 공동선언의 합의를 법제화했다. 서문에서 “홍콩의 역사와 현실을 고려하여, 일국양제의 방침에 따라 홍콩에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라고 못 박는다. 이번에 쟁점화된 입법권에 대해 기본법 제17조는 ‘홍콩 특별행정구가 입법권을 향유한다’고 규정한다. 제18조에서는 ‘홍콩에서 시행하는 법률은 이전부터 시행돼온 법률과 홍콩 입법기관이 제정하는 법률에 국한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중국 정부로서는 약간의 틈새를 만들어놓았다. 즉, ‘전국성 법률(중국 대륙 전체에 적용하는 법률)’의 경우, 원칙적으로 홍콩에서 시행되지 않지만 예외를 규정했다. 이른바 ‘첨부 문서 3’에 포함되는 조항이다. 또한 중국 전인대 상무위가 홍콩 정부와 기본법 위원회의 의견을 구한 뒤에는 ‘첨부 문서 3’에 포함되는 법률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고 규정해놓았다(증감권).

ⓒREUTERS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강행할 경우 영국 이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규정을 활용해서 홍콩 보안법이 제정된다. 사실 홍콩 기본법에는 이미 보안법과 같은 취지의 법조문이 존재한다. 바로 기본법 제23조다. “홍콩 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동을 선동하고 중앙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기밀을 절취하는 행위를 금지하여야 하며, 홍콩 특구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가 외국의 정치조직 또는 단체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

2003년에는 이 조항에 근거해 홍콩 자체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도록 만들려 했지만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2014년의 우산혁명, 2019년의 송환법 사태를 겪으며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발로 홍콩 특구 정부가 ‘자체적으로 제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등장한 편법이, 전인대 상무위의 ‘첨부 문서’ 증감권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리커창 총리가 5월22일 전인대에서 전격 발표한 홍콩 국가보안법의 정식 명칭은 ‘홍콩 특별행정구의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이다. 입법권을 지닌 홍콩 입법회의 권한을 우회하게 된 데 대한 절차적 설명을 담고 있다. 리 총리가 밝힌 보안법 초안의 목적은 기본법 제23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 보안법은 7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가 중국 중앙정부의 안보 관련 기구, 즉 공안부나 안전부 등이 홍콩 현지에 직무이행 기관을 설립하도록 한 것이다. 홍콩의 민주파 인사들을 중국 공안기관이 직접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홍콩 행정장관의 보고 의무, 세 번째는 보안법 위반 시 선고되는 최고 30년까지의 징역형이다. 5월28일 전인대를 통과한 법률은 현재 전인대 상무위가 기본법 제18조의 첨부 문서 3에 들어갈 법률 형태로 작성 중이다. ‘홍콩 정부와 기본법 위원회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에 따라 홍콩 특구 책임자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정부는 오는 8월 보안법 본격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9월의 입법회 선거에 민주파 인사들의 출마를 막아 친중파의 잔치로 만들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영국의 강수와 유럽의 향배

시진핑 정부가 미국의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영국의 반격이 날아들었다. 홍콩 시민 중 ‘영국 해외시민권(BNO)’ 보유자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다. 현재 6개월인 체류기간을 12개월로 늘리고 추후 영국 시민권 획득까지 허용하는 내용이다. 현재 35만명의 홍콩 시민이 BNO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1997년 반환 당시 소지자 290만명까지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2019년 현재 홍콩 인구는 745만명이다. 그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300만여 명이 영국 시민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민주화 시위의 주력인 23세 이하 청년들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출생자들이라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러나 홍콩 보안법 시행으로 홍콩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위협받게 될 경우, 영국의 이 조치는 든든한 방어막이 될 수 있다. 영국 시민권을 가진 홍콩 시민의 인권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영국이 개입해 문제를 제기하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리게 된다.

영국과 중국 관계는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영국을 방문해 400억 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황금시대를 구가하기도 했다. 지금의 보리스 존슨 총리도 지난해 취임 직전 기자회견에서 친중파를 자처할 만큼 중국 투자 유치에 열성적이었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에서 떨어져나온 영국 처지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절실했던 측면이 있다. 그런 이유로 올해 1월에는 5G 통신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동맹국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화웨이 통신설비를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용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의 정보 은폐로 영국이 유럽 최대 피해자가 되면서 집권 보수당 안에서 반중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중·영 공동선언을 무시한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통과는 영국으로 하여금 홍콩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초청장이 되었다. 영국이 움직이면 영연방 국가들이 함께하고 유럽이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화웨이에 대한 거부감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고, 중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이뤄지는 기업사냥을 막기 위한 유럽연합 차원의 움직임도 등장했다. 홍콩 보안법 파동 이후 미국은 한껏 여유를 갖게 되었다. 성난 유럽이 중국에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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