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5월28일 전체회의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초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발표부터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남짓이었다. 통과를 하루 앞둔 5월27일 도심 곳곳에서는 산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무장경찰이 최루탄을 남발하며 체포한 시민은 이날 하루만 369명에 달한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은 공식적으로 철회됐지만 ‘더 무서운 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콩 시민들은 지금 두 가지 법과 싸우고 있다. 먼저 홍콩 입법회가 2017년부터 추진 중인 ‘국가(國歌)법’이다. 국가법은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훼손해 연주·제창할 경우 벌금 5만 홍콩달러(약 800만원)나 3년 이하의 징역을 내릴 수 있다.
의용군행진곡은 홍콩의 국가이기도 하지만, 시위대의 상징과도 같은 ‘홍콩에게 영광을’이라는 곡이 홍콩에서는 더 널리 국가처럼 제창된다. 입법회에서 국가법 심의가 열렸던 5월28일 테드 후이 의원은 국가법에 반대하며 회의장에 오물을 던지려다 저지당했고, 에디 추 의원은 국가법을 본회의에 넘긴 상임위원장에게 항의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가 쫓겨났다. 입법회는 6월4일 국가법을 표결 처리할 예정이다.
국가법보다 홍콩 사회에 더 큰 타격을 줄 법은 홍콩 보안법이다.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감시 및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홍콩 보안법은 홍콩 본토에 이를 집행할 기관까지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전인대가 통과시킨 홍콩 보안법은 홍콩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부칙의 ‘첨부 문서 3’으로 삽입되며, 즉시 효력을 갖게 된다. 홍콩 입법회에서 따로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본법 제18조에 따르면 ‘첨부 문서 3’에 포함될 수 있는 법률은 ‘국방, 외교와 그밖에 홍콩 자치 범위에 속하지 아니하는 법률’로 제한된다. 홍콩 보안법처럼 국가안보와 관련된 부분은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자체적으로 입법’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사전에 민의를 수렴하지 않고, 입법회까지 우회하는 만큼 ‘일국양제’를 철저히 파괴하는 내용이다.
홍콩 보안법과 국가법 입법이 동시 진행되는 동안 5월19일 홍콩 시내는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폭력을 사용하는 독립 세력이 여전히 창궐하고 있다. 국가 안정을 위해 법 추진 필요성과 긴급성을 재확인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친중파 언론의 견해는 물론이고 베이징의 방침과도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신문 1면에 홍콩 보안법 광고를 게재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가 컸다. 지난해 6월 말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홍콩 시민들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홍콩을 지지해달라’는 광고를 한국의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일본·타이완·독일·프랑스·미국 등 각국 주요 신문에 게재했다. 또한 민주 진영 대표 인물들이 외국을 방문해 홍콩 상황을 알리는 연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결실이 지난해 11월 미국 상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홍콩 인권법안)이다. 이 법안은 미국 국무부가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이 누리는 경제·통상 부문의 우대 혜택을 재검토하도록 규정했으며, 홍콩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한 책임이 있는 인물에 대한 제재 내용도 담고 있다. 이런 상황도 베이징의 신경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친중파는 시위대 사이에 나부끼는 영국·미국 국기를 근거로 ‘서양 세력 배후설’을 제기하며 홍콩 보안법으로 외국 세력의 간섭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콩 내 민주 진영은 홍콩 보안법이 사실상 ‘일국양제’의 사망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역시 강력한 대응조치로 맞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28일 일국양제 원칙이 ‘일국일제’로 대체됐다고 비판했으며,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국면이 달라졌다. 홍콩 보안법은 중·미 외교 분쟁 의제가 됐다(예상 못한 ‘영국의 반격’에, 난감한 ‘중국’ 기사 참조).
베이징은 왜 ‘보안법’ 카드를 꺼냈을까. 홍콩 정세와 무관하지 않다. 임기가 4년인 입법회 의원 선거는 오는 9월에 열린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주 진영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다(〈시사IN〉 제638호 ‘오늘은 승리했지만 내일이 불안하다’ 기사 참조). 민주 진영은 다가올 선거에서 ‘35+ 운동’(입법회 내 과반 의석인 35석 취득)을 펼치고 있다. 입법회 주도권을 쥐어 홍콩 정부가 제정안이나 중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게 하고, 자신들이 협상 카드를 갖기 위해서다. 베이징과 친중파는 반대 진영이 이번 선거에서도 압도적 승리를 거둘까 봐 염려하고 있다.
베이징은 간섭 권한 없는 입법회 사무에도 개입하고 있다. 지난 4월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은 입법회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를 맹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중련판은 중국 본토와 홍콩 사이 연락사무소 구실을 해오고 있다. 내정간섭을 금지하고 있는 홍콩 기본법 제22조에 따르면 ‘중앙 인민정부 소속 모든 부서, 성, 자치구, 직할시는 홍콩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사무에 간섭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련판의 성명을 두고) 홍콩에 대한 관여는 간섭이 아니라 권리이자 책임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간섭을 정당화하며 기본법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송환법 무력화로 중국의 인내심이 끊어지다
그동안 홍콩 입법회는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자체적으로 입법’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국가안보에 대한 입법에 실패를 거듭해왔다. 2002년 한 차례 입법 추진을 시도했다가 거센 반발로 포기했고, 이후 마치 금기처럼, 입법을 시도한 행정수반은 없었다. 송환법 무력화는 베이징에 확신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홍콩 보안법 강행은 베이징의 ‘인내심’이 바닥났으며, 관련 법안을 홍콩이 자체적으로 입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통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보안법의 자세한 조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는 계속 “법률을 준수하는 사람이라면 우려할 필요가 없는 법”이라며 민심을 진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향후 시위는 물론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끼치리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당장 톈안먼 추모집회가 영향을 받았다. 홍콩은 지난 30년 동안 1989년 발생한 톈안먼 사건을 추모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매년 6월4일 중국 전역을 통틀어 홍콩에서만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으며 지난해에는 참여자가 18만명에 달했다. 이 집회를 개최하는 시민단체 ‘홍콩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연합회’는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종식’ 및 ‘민주화 중국 건설’ 등 구호를 외쳐왔다. 올해 경찰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이 집회를 처음으로 금지했다. 향후 이런 집회가 계속 진행될 수는 있는지, 그리고 ‘일당독재’ 구호가 홍콩 보안법에 저촉되는지 등 여러 의문이 남는다.
일부 시위대는 외국의 지원을 얻어 베이징에 압력을 가해 홍콩 보안법이 연기되거나 철회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중·미 무역전쟁의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홍콩은 양국이 이용하는 체스판의 ‘말’일 뿐이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이 티베트나 신장위구르가 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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