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주민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푹 눌러쓴 모자’였다. 지난 7월31일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둘째 아들(6)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 한 아무개씨(42)는 항상 넓은 챙 끝에 검은 테두리가 둘러진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다. 한씨의 이웃은 그가 탈북민이라는 사실도, 아이가 장애를 앓았다는 사실도 뉴스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한씨가 살던 곳은 전용면적 31.56㎡(약 9.5평)인 재개발 임대아파트였다. 그의 이웃들은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서로 왕래했다. 복도에서 부침개도 지져 먹고, 김장도 함께 담갔다. 이웃들은 한씨가 외출할 때 인사를 건넸지만 한씨는 고개를 더욱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한 이웃 주민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로 나눠먹었던 음식 냄새가 미안해. 말을 정 못 꺼내겠으면 복도에 말려둔 나물이나 쌀이라도 좀 훔쳐가지….”
한씨는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탈북했다. 정확한 탈북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중국 남성과 결혼했다. 탈북민들은 그의 결혼이 강제 결혼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국경 너머에 아는 사람 없이 탈북한 여성에게는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한씨는 남편과 아들이 있었지만 중국 공안에게 붙잡히면 다시 북한으로 보내질 수 있었다. 2009년 그는 홀로 타이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을 도왔던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은 “보통 입국하면 연락을 끊거나 브로커 비용을 깎아달라고 전화하는데, 한씨는 먼저 연락해서 250만원을 다 갚았다. 고지식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통일부 산하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그를 만났던 동기 이 아무개씨는 “한씨가 제빵제과 자격증도 따고, 운전면허증도 취득하는 등 의욕적이었다”라고 기억했다.
한씨는 그해 정부 지원으로 봉천동의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보증금 1074만원에 월세로 16만원씩 냈다. 곧 직장을 얻은 그는 중국에 있는 남편과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왔고, 2012년 3월에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 태어난 아이는 뇌전증을 앓았다. 남편은 경남 통영시로 내려가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한씨도 통영과 서울 집을 오가며 지냈다. 2017년 조선업계가 침체에 빠지자 한씨 가족도 일자리를 잃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한씨 가족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중국과 서울 집을 여러 차례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는 어느 한곳에서 안정적으로 경력을 이어갈 기회가 없었다.
결국 남편과 이혼한 뒤 아예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8년 10월4일 주민센터를 찾았다. 둘째 아들에 대한 아동수당과 양육수당을 신청해 각각 10만원씩 받을 수 있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고, 한씨 역시 일을 하러 나갈 수 없었다. 두 달 뒤인 12월7일 그는 아동수당과 양육수당을 받는 계좌를 변경하기 위해 다시 주민센터를 찾았다. 당시 그를 상담한 직원의 모니터에는 한씨가 받는 수당에 관련된 정보뿐만 아니라 소득인정액과 같은 정보가 함께 떴지만, 별다른 안내는 없었다.
열흘 후인 12월17일 그는 다시 한번 계좌 변경을 위해 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소득인정액은 여전히 0원에 가까웠지만, 그가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기초수급, 한부모 가정 수당, 장애아동 수당이나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대해 안내받지 못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좀 더 자세하게 한씨의 사정을 살펴보지 못하고 놓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개선하겠다”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안내가 법적인 의무는 아니지만, 한씨처럼 고립된 환경에 놓인 사람에게는 유일한 기회였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가 주민센터에 기초수급 신청 절차에 대해 문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용화 회장은 올해 봄 한씨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려면 이혼 서류를 가져오라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이혼 서류는 반드시 제출할 필요가 없는 임의 서류 중 하나다. 김 회장은 직접 관악구청 복지정책과에 전화해 “일단 지원해주고 이혼한 사실이 거짓이면 나중에 가중처벌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항의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나도 ‘방법이 없다’고 말하니까 한씨가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악구청 측은 “한씨가 기초수급 상담을 한 기록이 없다. 당시 담당자도 그런 상담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라고 해명했다.
그즈음 둘째 아들이 만 6세가 되면서 아동수당마저 끊겼다. 한씨의 월수입은 양육수당 10만원뿐이었다. 임대차 계약은 이미 해지된 지 오래였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동작센터 관계자는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데, 한씨의 경우 원래대로라면 2016년 초에 재계약을 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재계약 조건은 밀린 월세를 완납하는 것이었지만 한씨는 월세를 낼 형편이 못 되었다
기초수급 신청만 제대로 되었다면…
올해 3월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집을 방문한 SH공사 관계자에게 한씨는 4월에 이사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이사를 가지 못했다. SH공사 관계자는 5월에 재차 방문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월세를 16개월이나 밀린 그가 복지부와 서울시에 위기가구로 통보되지 않은 이유는 재개발 임대아파트의 월세 체납 정보는 수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기세와 수도세도 관리비에 포함돼 따로 집계되지 않고 있었다.
탈북민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에서도 한씨의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경우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탈북민을 보호하고 상태를 확인하는 기간인 5년이 넘은 상황이었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탈북한 지 5년이 넘었어도 도움을 청하면 똑같이 지원해드리지만, 보통 먼저 연락을 해도 싫어한다. 대부분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2018년 남북하나재단에서 낸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이 차별을 당한 가장 큰 이유로 ‘말투 등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57%)’이 꼽혔다. 이웃이 말을 걸어도 한씨가 대답하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5월13일 한씨는 통장에서 3858원을 인출했다. 잔액에는 ‘0’이 찍혔다. 이후로 두 달이 넘도록 그를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6월30일 수도검침원이 방문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7월31일 다시 방문한 검침원이 이상한 냄새를 맡고 관리사무소에 신고했다. 한씨와 아들은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 남은 식재료는 고춧가루뿐이었다. 경찰은 사인을 아사로 추정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복지부와 통일부, 서울시와 구청의 안전망은 번번이 한씨를 비껴갔다. 실업 상태로 장애아동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였던 탈북민 한씨에게는 세 발자국 떨어진 이웃집의 열린 현관에 들어설 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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