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다시 한번〉은 도다 세이지의 단편 30화로 이루어진 만화책이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 심지어 몇몇 작품은 단 한 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와 울림이 커 이 작가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검정 1, 2’는 두 쪽짜리 단편이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인연이 되어준 고양이와의 만남을 건조하게 그렸다. 하지만 누구라도 함께하면 ‘가족’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삶, 죽음, 가족, 인연, 그리고 사랑이다. ‘검정’에 이어 계속되는 세 편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작은 죽음’과 ‘2009년의 결단’에서는 죽음 앞에서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성찰을 보여준다. 특히 만화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한 대사가 눈에 많이 띈다. “창작이란 건 사실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특권 아닐까.”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작가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져가는 듯한 조용한 시간 속에” 서서히 죽어간다. 작가는 꽃을 못 피우게 하려면 물이랑 영양분을 충분히 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식물이 안심을 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단다. 꽃이 피게 하려면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영양분이 고갈된 식물이 죽어가면서 자손을 남기기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라고. 그렇다. 우리의 삶도 고통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고 그런 고통을 견뎌야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
단편들이 모두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한 쪽짜리 단편 ‘아톰’에서는 인류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해학적으로 담겨 있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일본 인디 만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도다 세이지는 이 책이 데뷔작인데도 ‘단편의 귀재’답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면면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개인 삶에 충실한 인간의 자세와 그런 작고 소중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의 일관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개인 홈페이지에 1999년부터 작품을 공개했는데,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단행본을 엮기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를 만화로 처리한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자잘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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