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비채 펴냄

“녀석과 나란히 앉는다는 것은 내 삶의 속도를 늦춰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을 없앤다는 뜻이다.”

4년 전 고양이 한 마리와 우연히 식구가 된 이후 고양이와 관련된 책이라면 빠짐없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를 글이 메꿀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 같은 ‘집사’가 한둘이 아닌지, 언젠가부터 ‘고양이’를 제목에 매단 책이 끝도 없이 나온다. 대개는 실망했고, 더러 매우 도움이 되었다. 절판된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1998, 예문) 역시 어렵게 구해 읽었던 책 중 한 권이다. 자자한 소문을 ‘역시나!’ 하며 확인했지만, 번역이 아쉽던 차였다. 그 책이 이번에 담백하고 간결한 번역과 단단한 장정으로 새 옷을 입었다. 기존 원고에 2000년 출간된 〈엘 마니피코의 노년〉을 더해 한 권으로 묶었다. 다정하지만 유난스럽지 않고,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미화하지도 않는다.

 

 

 

 

 

 

 

 

 

내 인생은 열린 책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그런가 하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주위에 머무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여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루시아 벌린의 단편집 〈청소부 매뉴얼〉을 아직도(!) 아껴 읽고 있다. 단편이지만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 한 달음에 읽어 내릴 수 없는, 심드렁하게 읽다가도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소설이었다. 침대맡에서 한 편씩 읽고, 그보다 오래 소설에 대해 생각하다 잠들곤 했다. 〈청소부 매뉴얼〉에 실린 단편 43편을 채 읽기도 전에 〈내 인생은 열린 책〉에 실린 22편이 새로 도착했다. 척추옆굽음증과 알코올의존증과 싸우면서, 세 번의 이혼을 겪고 네 아들을 부양하면서 써 내려간 글들이다. 청소부였고, 전화교환수였고, 대학교수였던 널뛰는 삶, 그 자체가 펄떡이는 소설이 되었다. 자전적 에세이(〈웰컴 홈〉) 역시 ‘근간’이라니 최근 들은 소식 중 가장 반갑다.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정혜승 지음, 창비 펴냄

“20세기에 기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운 좋은 사람이었다.”

제목부터 뭔가 속터짐이 묻어난다. 종이신문과 인터넷 포털 회사를 거쳐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국민청원을 만들었던 저자는, 자기 커리어를 압축하는 문장을 그대로 책 제목에 박았다. 언론도, 포털도, 심지어 청와대도 무언가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일이 꼬이는 직장이다. 쌍방향 소통을 만들어내려면 훨씬 더 잘 들어야 하고, 이용자들이 훨씬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저자의 커리어는 홍보와 소통의 차이를 입증하는 싸움이었다. 동시에, 둘의 차이를 도무지 이해하려 들지 않는 ‘높은 분들’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얼핏 통일성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일방 홍보에서 쌍방향 소통으로’라는 주제가 책 전체에 깔려 있어서 길을 잃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김창규·박상준 지음, 에디토리얼 펴냄

“이제 선택은 인간에게 달렸습니다.”

손바닥(초단편) SF 소설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새로운 갈등, 관계, 고민, 감정을 읽는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가상화폐 등 이제는 일상이 된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상상이라 더 섬뜩하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을 통해 신체와 인격을 ‘편집’하거나 죽은 자를 데이터로 변환해 저장해둔다는 SF적 상상이다. 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으로 인정하고,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유전자 편집 시술이 시행된 것이 2017~2018년의 현실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계층 갈등이 심화되는 현실도 더 이상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니다. SF와 칼럼이 만나 이 시대에 필요한 사회윤리적 논쟁의 장을 연다.

 

 

 

 

 

 

 

 

 

 

동북아 바다, 인문학으로 항해하다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 사업단 지음, 산지니 펴냄

“위기는 바다를 모를 때 왔다.”

바다 이야기는 다 재미있다. 1853년 조선과 최초로 접촉한 미국 배는 포경선이었다. 부산 용당동 앞바다에 한 척이 표착한 이래 고래를 찾아 미국에서 온 포경선들이 피항지를 찾아 조선 연안에 정박했다. 1923년 제주도와 일본 오사카 사이에 항로가 열리면서 생활고에 지친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4년에는 제주도 인구의 4분의 1이 일본에 살았다. 중국 상하이는 1930년대 이후 일제가 점령하면서 친일 인사들로 넘쳐났다.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 사업단 연구진 13명이 〈국제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묶었다. 개항, 어촌에 남은 일본어, 부산의 산동네 등 동북아 바다를 둘러싼 이야기 40여 편을 담았다. 흥미로운 주제 아래 담긴 짧은 글들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여기 우리가 있다
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

“국가는 이들의 수난을 조장하거나 방치하였다.”

지난 2월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다. 청도대남병원에 20년 넘도록 입원해 있던 조현병 환자였다. 삶의 3분의 1을 병원에 갇혀 지낸 정신장애인이 감염병에 가장 먼저 희생됐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할까.
한 의사가 이 부끄러운 질문을 파고들었다. 2018년 이탈리아 정신보건혁명에 대해 다룬 책 〈자유가 치료다〉를 펴낸 백재중 녹색병원 내과 의사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정신장애인 수난사를 다뤘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신장애인들이 주류에서 배제당하고 감금당해온 역사,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으며 꿋꿋이 ‘여기 우리가 있다’고 말해온 역사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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