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국 대륙의 명청(明淸) 교체기 당시 한반도 인조 정권의 외교정책을 역사적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삼는 담론이 나온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다. 중국이 신흥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더니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엔 한·중 무역 규모가 연간 20%씩 폭증하던 시기였다. 느닷없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이 청나라냐’라는 논쟁이 출현했다.
구슬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세계체제의 주변부에 놓인 ‘반도 소국’은 숙명적으로 ‘지금의 패권국가’와 ‘미래의 패권국가’를 가려내고 알아서 기어야 한다. 전형적인 약자의 논리다. 중국의 실력이 과대평가되어온 것은 아닐까? 2009년 중국 정부가 선언한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큰 충격이었다. 위안화가 곧이어 달러화를 추월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언젠가 어떤 강연회에서 달러와 위안의 경쟁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곧바로 대답했는데 잠시 조용해졌다. 거래 상대방에게 지불할 때 사용하는 통화(payments currency)의 순위에서 위안화는 2010년대 중반 이후 5위다. 문제는 그 비중이다. 지불통화 가운데 달러의 비중은 무려 40%대 초반, 유로화는 30%대 초반. 위안화는 2%대에 오른 이후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달러화는 단지 수많은 통화 중 하나가 아니다. 다른 통화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통화의 세계에서 달러는 공기다. 달러의 지위는 미국 패권의 현재다.
반도 소국이라고 해서 ‘어느 나라가 더 강한가’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의 가치가 이로운지 따져야 한다. 한국인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 자유주의, 법치주의 등 현대 국가적 가치를 중시한다. 한국은 어느새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는 나라로 성큼 성장했다. 중국은 한국의 미래일 수 없다. 한국이 중국의 미래여야 세계가 진보하는 것이다.
이번 제664호에는 설문조사에 기반한 두 개의 긴 기사를 실었다. 천관율 기자가 ‘포스트 코로나19’ 한국 사회의 발전 가능 경로를 분석했다. ‘가짜뉴스 잡는’ 유튜브 헬마우스는 온라인 여론조사를 통해 20대, 30대, 40대의 정치 성향이 기존 정치 질서를 전복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용과 소재는 다르지만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한국은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가치관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 기회를 맞고 있다. 지금 586으로 불리는 1960년대생들이 젊은 시절 가졌던 조국의 이미지는 ‘한(恨)의 나라’ ‘약소국’ 등이었다. 약자 의식은 해외 대국들에 거칠게 반대하거나 의존하는 양태로 나뉘었다. 그들은 상대방을 친미니, 종북이니, 친중이니 하며 치열하게 싸워왔다. 이런 약자 의식부터 버려야 새롭게 열어나갈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 아! 젊은 세대는 당초부터 그런 약자 의식 자체를 익히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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