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5월27일 서울 성북구 정덕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이 학생들의 등교를 돕고 있다.

어린이 교통사고 뉴스가 나올 때마다 연일 이목이 쏠린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민식이법’의 영향이다. 등교 수업이 시작되면서 사고가 이어지자 인터넷에서는 민식이법 적용 여부를 두고 누리꾼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 어린이를 동정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묻히는 모양새다. 더 자주 보이는 의견은 이 법에 대한 반감과 공포다.

민식이법 시행 후 첫 사망사고는 5월21일 전북 전주에서 일어났다. 운전자가 왕복 4차선 도로에서 불법 유턴을 해 2세 유아를 숨지게 한 사건이다. 피해 유아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전주지방법원(최영철 영장전담판사)은 기각했다. “범죄사실 성립 여부에 다툴 여지가 있고, 피해자 측 과실 여부, 피의자 전과 및 주거, 가족관계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이유였다.

“당연하다”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불법 유턴을 한 가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보다 “조심해도 애들은 피하기 너무 힘들다” “아이를 혼자 둔 보호자도 처벌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더 지지를 받았다. 민식이법 시행 후 포천 11세 어린이 사고(3월27일), 자전거를 타던 9세 어린이가 다친 구미 사고(5월20일), 5세 어린이가 다친 강원도 동해 사고(5월26일)에 대한 반응도 비슷했다. 인터넷 여론은 법 시행 전보다 더 각박하다. 어린이는 ‘폭탄’처럼 취급되고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12월10일 국회를 통과한 어린이보호구역 관련법(도로교통법 개정안·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별칭이다.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홉 살 김민식군이 차에 치여 사망한 일을 계기로 제정됐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부분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연합뉴스‘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고 김민식군의 부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검찰과 재판부가 바보는 아니다”

법이 통과된 직후부터 우려가 없지 않았다. 일부 언론과 유튜버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이와 스치기만 해도 처벌받는 법”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민식이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인 3월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민식이법은 입법권 남용과 여론몰이가 불러온 엉터리 법안이다”라고 썼다. 과실 범죄인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에 음주운전 사고만큼 무거운 처벌을 가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어린이 보행자의 돌발행동을 운전자가 예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도 적었다. 한 달 만에 35만명이 동의했다. 5월19일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청원 답변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은 운전자에게 특별한 안전운전 의무가 부여된 지역입니다. (…) 어린이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입법 취지와 사회적 합의를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민식이법이 ‘처벌하지 않던 것을 처벌하는 법’은 아니다. 어린이보호구역 사고를 처벌하는 조항은 이전부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 사고는 ‘12대 중과실’에 포함된다. 일반적 교통사고와 달리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명시하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범죄)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 사례다. 민식이법은 처벌 요건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그대로 따왔다.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 제한속도(대부분 시속 30㎞이다)를 준수하지 않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에게 사고를 낸 경우이다.

도로교통법 제12조 1항에 따른 조치는 ‘도로 특정 구간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시속 30㎞ 이내로 통행속도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법은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는 운전자에게 ‘제한속도 준수’와 ‘어린이 안전을 유의하면서 운전할 의무’를 모두 부과했다. 운전자가 둘 중 하나만 어겼어도 사고로 어린이가 다치거나 사망하면 처벌한다.

일단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나면 시속 30㎞ 이하로 달린 것만으로는 운전자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사고 차량 운전자가 ‘어린이 안전을 유의하면서 운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시속 20㎞나 시속 10㎞, 5㎞로 달렸어도 어린이가 차에 치여 사망하면 그 안전을 유의하지 않았던 운전자는 처벌된다. 이때 운전자의 주의 의무가 어느 정도를 뜻하는지는 판례가 없다. 휴대전화 조작이나 통화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인지, 좌우를 수차례 살피고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는 수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법조인들은 민식이법에 대한 견해와는 무관하게, “검찰과 재판부가 바보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날 때마다 경적을 울리거나 차를 손으로 밀게 만들 판례가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는 이야기다.

ⓒ연합뉴스2019년 12월10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그런데 민식이법은 정부나 일부 정치세력이 밀어붙인 법안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의 폭발적 지지가 국회를 압박한 쪽에 가깝다. 지난해 10월1일 피해자 아버지의 청와대 청원으로 이 사건이 알려졌다. 청원을 몇몇 언론이 기사화했고, 채널A의 시사 예능 프로그램에 민식이 부모가 출연하면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었다. 지난해 11월19일 MBC ‘국민과의 대화’ 방송도 한 계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패널 300명 중 첫 질문자로 민식이 부모를 지목했다. 아들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는 그들을 보고 대통령은 고개를 숙였다. 유명 연예인들이 SNS에 민식이법 지지 의사를 밝혔다. 사건을 다룬 포털사이트 기사와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는 ‘국회가 일을 안 한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6개월 전만 해도 이 법은 성격이 비슷한 몇몇 법안과 묶여 ‘비쟁점 민생법안’으로 불렸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정치적 논쟁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에 필요하니 꼭 통과되어야 할 법안’이라는 뉘앙스로 이 표현을 사용한다.

여야 모두 동의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명수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11월 말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공수처 설치, 선거법 개정 등)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추진하다가 ‘민식이법 같은 민생법안을 가로막는다’는 여론에 압도당하기도 했다. 강훈식 의원은 11월29일 ‘자유한국당 규탄 대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국당 의원들 국회의원 한 번 더 되려고 아이들 죽여도 괜찮나?”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민식이법 처리를 반대한 적이 없다’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1월27일 당내 중진회의에서 “우리 자유한국당이 단 한 번이라도 민식이법을 반대한 적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12월10일 법안이 통과되자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은 자유한국당도 적극 찬성한 법안”이라며 “민식이법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는 민주당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었음이 오늘 본회의에서 드러났다”라고 주장했다.

핵심은 형량이다. 기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운전자의 과실치사상을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사고를 어린이 상해와 사망으로 세분화했다. 상해 시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 사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바꿨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국회는 형량 문제를 두고 별다른 논쟁을 거치지 않았다. 11월29일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의원이 금고형이 아닌 징역형으로 정한 이유를 질의하자, 김오수 법무부 장관직무대행 겸 차관이 “어린이를 좀 더 강하게 보호하자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법조계에서는 민식이법의 형량에 회의적 의견이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형사법)는 “(민식이법이 규정한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자체는 동의한다”라면서도 “법정형이 과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중시하는 기준은 고의성이다. “고의범죄인 강간죄는 3년 이상 유기징역을 받는다. 살인죄는 5년 이상 징역이다. 민식이법은 과실범인데도 형량에 큰 차이가 없다. 균형이 맞지 않는다.”

많은 형법학자들은 중형이 범죄 예방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본다. 징역 1년형에 처하던 범죄를 10년형에 처한다고 범죄율이 유의미하게 줄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 필요한 건 처벌 가능성이라고 한다. 10건에 1건꼴인 범죄 적발을 7건, 8건으로 늘리는 일, 달리 말해서 ‘집행 결손’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하 교수는 법정형을 정할 때 고의성을 등한시한다면, 결국 집행 결손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입법 과정에서 과실과 고의의 경계를 무너뜨리면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진다. 이렇게 되면 법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현실적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가해자에 대한 집행 결손이 늘어난다. 하태훈 교수는 “모든 사안을 형벌에 의존하는 게 최근 경향”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민식이법’ 시행 첫날인 3월25일 부산 동래구 한 초등학교 앞에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로 걸어가는 한 어린이.

불법 주정차 문제가 더 심각할까

하지만 형법학계의 경향과 달리, 한국은 대다수의 범죄에 대해 엄벌 여론이 높은 국가다. 소년법, 성범죄 관련법, 살인죄 공소시효 등 대부분 엄벌 의견이 앞선다. 왜 민식이법에 대해서는 다를까? 하 교수는 도로교통 관련법의 특성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은 보통 범죄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자신이 살인죄나 강간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면 운전은 누구나 하고, 자신이 교통사고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 교수는 이런 이유로 교통사고 관련 범죄는 처벌이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경기도가 지난 4월8일부터 11일까지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는,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의 책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드러나 있다. 응답자 55%는 ‘사람들이 어린이보호구역 법규(제한속도, 주차금지 등)를 잘 지킨다’고 답했다. ‘지키지 않는다’는 응답은 43%였다. 흥미로운 문항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가장 큰 사고 원인’이다. ‘불법 주정차로 인한 시야 방해(23%)’가 1위였다. ‘어린이를 포함한 보행자 무단횡단(18%)’ ‘주변 생각하지 않는 어린이 행동 특성(15%)’ 등 운전자 이외의 요인들이 사고 원인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제한속도 및 신호 위반(18%)’ ‘운전자의 낮은 보호의무 의식(15%)’ 등 운전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답은 합계 33%였다. ‘처벌 시 낮은 벌금 및 형량’은 4%에 불과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법규 위반자를 줄이는 방안을 물었을 때도 ‘불법 주정차 금지 표지 확대 및 CCTV 설치(36%)’가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답변을 보면, ‘어린이보호구역 법규 위반’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나더라도 그 주원인은 운전자가 아니다.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 시야를 방해하는 와중에 예측 불가능한 어린이가 튀어나온다. 사고를 줄이려면 운전자 처벌 형량을 늘릴 게 아니라 불법 주정차를 단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보행자나 주변 환경이 아니라 운전자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묻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어린이보호구역은 특수하다. 때와 상대방에 따라 법원은 운전자의 면책을 더 폭넓게 인정하기도 한다. 가령 육교가 있는데도 보행자가 차도로 무단횡단을 했다면, 운전자는 주의의무가 없다. 고속도로나 지하차도 부근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나도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신뢰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교통규칙을 준수한 운전자는, 다른 교통 관여자(운전자·보행자)가 교통규칙을 위반하여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것까지 예견해 방어할 의무는 없다는 원칙이다. 신뢰의 원칙은 점점 더 넓게 적용되는 추세다.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불일 때 반대 차선에서 건너오는 보행자를 예측해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가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은 신뢰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예외다. 어린이는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을 저질러 교통규칙 준수를 담보할 수 없는데, 사고로 이어지면 성인보다 신체·정신적 피해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보행자인 어린이는 예측 불가능하더라도, 교통시설과 단속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과속방지턱이나 울타리를 늘리고 불법 주정차를 철저히 단속하는 일이 민식이법의 운전자 처벌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실명입법론〉을 펴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홍완식 교수(헌법)는 “단속만으로 운전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 민식이법의 이름과 높은 형량은 대중의 관심을 끈다. 어린이보호구역을 피하는 내비게이션 앱이 나오는 등, 처벌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사고 예방은 사고 운전자 처벌보다 더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2015년 박상근 서울시교육청 정책·안전기획관 안전관리팀장은 논문 〈학교 안전사고로서의 교통사고 발생원인 및 개선방안에 대한 질적 연구〉에서 어린이보호구역 관할 행정청의 현장 목소리를 전했다. “과속방지턱을 (…) 화물차 운전자들이 싫어하고, 인근 주민들도 방지턱 때문에 생기는 소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바” “학원의 경우 어린이보호구역 지정을 꺼리는 편인데, (…) 주정차도 할 수 없게 되어 학부모들이 곤란을 겪게 되어” “주차단속을 강화하면 상인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집단 민원을 내고 있어” 따위다. 박상근 팀장은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상인들의 집단민원이 접수되면 선출직 공무원인 자치단체장은 다음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단속을 완화하다가, 반대로 학교 민원이 있으면 다시 단속을 강화하는, 이른바 학생 안전과 인근 주민의 생계 사이에 끊임없는 단속과 타협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