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더 라스트 댄스〉는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코로나19로 NBA 시즌이 중단됐지만 농구계 전체가 일요일 밤마다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을 것이다. 플레이오프 때문이 아니라 1997~1998 시즌의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에 관한 10부작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를 보기 위해서다.” 미국의 스포츠 채널 CBS 스포츠의 예측이 맞았다. 재방송을 포함하면 미국 전역에서 1500만명이 〈더 라스트 댄스〉 1회를 봤다. 전 세계 시청자가 4월19일부터 ESPN에서 방영한 이 다큐멘터리에 주목했다. 한국에서도 5월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후 시청률 5위 안에 진입했다.

〈더 라스트 댄스〉는 NBA 우승을 여섯 번 차지한 시카고 불스의 다섯 번째 우승, 그 영광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옛 시절을 회상하며 웃고 우는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다. 조던을 뺀 나머지 시카고 불스 선수들의 전성기가 끝나가던 시점의 이야기다. 500시간 분량의 기록과 당사자의 증언, 106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이 시기를 기억하는 NBA 팬들과 코로나19로 스포츠 중계를 즐길 수 없게 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이 비로소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1년간 공백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마이클 조던을 카메라 앞으로 불러낸 건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였다. 〈더 라스트 댄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그가 제작을 수락한 배경에도 넷플릭스가 있다. 마이크 톨린 감독이 2016년 기획안을 가지고 무작정 그를 방문했을 때 조던은 그의 프로필에서 〈아이버슨〉을 발견했다. 미국 농구선수 아이버슨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버슨〉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다. 조던이 그 작품을 보고 세 번 울었다고 말했다. 기존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그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 중 하나였다.

최근 몇 년, 화제가 되는 다큐멘터리의 최전선에 넷플릭스가 있다. 올해 1분기에만 넷플릭스의 신규 가입자는 약 1577만명이다. 지난해 말 가입자에 비해 9.5%(960만여 명)가 늘었다. 전 세계 가입자는 총 1억8290명이다. 작품 보는 시간보다 뭘 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은 걸 의미하는 ‘넷플릭스 증후군’이 코로나19로 세계적 추세가 되었다. 이 시기 영미권에서 넷플릭스의 성장을 견인한 대표적인 작품이 〈타이거 킹:무법지대〉다. 역시 다큐멘터리다. 지난 4월 미국에서 공개된 후 단 열흘 만에 3430만명이 시청했고, 한 달 만에 전 세계 6400만 가구가 보았다.

중막장에서 시사까지, 다큐 전성시대

〈타이거 킹:무법지대〉는 그간의 다큐멘터리와는 좀 다르다. 쉽게 말하면 ‘막장 다큐멘터리’다. 미국의 사설 동물원 문제를 파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호랑이를 키우는 동물원 운영자 조 이그조틱의 기행과 동물보호단체 대표 캐롤 배스킨 간의 대립이 중심에 놓인다. 조 이그조틱의 캐릭터도 이름처럼 기이하지만 동물보호를 명분으로 자원봉사자들을 착취해 보호소를 운영하는 캐롤도 수상쩍다. 방영 후 수감 중인 조 이그조틱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기도 했다. 엄청난 흥행을 두고 미국 사회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있을 정도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흥행만 보증하는 건 아니다.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팩토리〉가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미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과 미국인 노동자의 갈등을 포착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제작에 참여했다. 넷플릭스는 시리아 구조대를 다룬 〈화이트 헬멧:시리아 민방위대〉(2017년), 스포츠계 도핑 문제를 폭로한 〈이카로스〉(2018), 생리대를 만드는 인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피리어드:더 패드 프로젝트〉(2019) 등으로 4년 연속 수상작을 냈다. 작품성과 흥행성 면에서 두루 성과를 내면서 제작 현장에서는 ‘넷플릭스 다큐처럼 만들라’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우리의 지구〉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살인을 말하다:테드 번디 테이프〉 〈FYRE: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등의 다큐멘터리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 세계 가입자 중 3분의 2가 적어도 한 편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시청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디에고 부뉴엘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담당자는 “이 분야에서 20년 동안 종사해왔는데 수백만 명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인기 있는 오락의 형태로 만들었고, 시청률로 확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와 좀처럼 가까워지기 어렵던 사람들도 기존 문법과는 좀 다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측은 콘텐츠의 장르를 나누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디에고 부뉴엘은 “주제를 찾지 않고, 이야기를 찾는다. 차라리 훌륭한 이야기 하나, 훌륭한 인물 한 명처럼 사람들이 매료될 만한 밀도 높은 이야기를 갖고 싶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마블 영화와 경쟁할 만큼 흥미로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역사 다큐멘터리보다 현대 이야기를 선호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역사 콘텐츠는 이미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최근 공개된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에서도 돋보인다. 2018년 출간한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의 출간 북콘서트 투어를 쫓는 이 다큐멘터리는 흑인 여성의 개인사와 미국의 역사가 만나는 순간을 잘 포착해낸다. 〈인사이드 빌 게이츠〉(빌 게이츠)와 〈미스 아메리카나〉(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인물을 파고들어 그 이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성공한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시리즈물이라는 점이다. 드라마처럼 한 시간 내외 분량이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전개된다. 단지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충분히 담되 다음 편이 궁금해지도록 연속극의 기법을 차용한다. 〈타이거 킹:무법지대〉 역시 매회 다른 장르인 것처럼 새롭다.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워 ‘다음 회’를 누르게 된다. 영미권에서 특히 반응이 좋은 범죄 다큐멘터리도 그렇다. 〈계단:아내가 죽었다〉를 비롯해 〈어느 일란성 세쌍둥이의 재회〉도 진실을 추적해가는 방식이다.

나라별로 선호하는 다큐멘터리가 다르다. 지난해 넷플릭스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이용자들은 〈길 위의 셰프들〉을 비롯해 〈더 셰프 쇼〉 〈풍미 원산지〉 등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를 많이 시청했다. 넷플릭스는 자연, 과학, 정치, 건축, 음식 등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시사 이슈도 예외가 없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 달리 분량이나 형식 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공개된 〈익스플레인:코로나를 해설하다〉가 대표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개요와 현재 상황을 30분 분량에 담았다. 지난해 공개된 〈익스플레인:세계를 해설하다〉 시리즈는 회당 15분 내외로 미디어 매체인 복스가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뉴스 콘텐츠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동영상 플랫폼에서 유통시킨다.

재미를 추구하는 대개의 콘텐츠가 그렇듯 넷플릭스의 일부 다큐멘터리는 선정적이다. 범죄를 흥밋거리로 취급하거나 음모론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간 넷플릭스는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 이상 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격리의 시대’, 넷플릭스 증후군은 더 강화될 것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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