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이 들 때가 많았다. 매주 다른 상황에 놓인 취재원들을 만났지만 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서 자주 만났다. 코로나19가 위협하는 ‘약한 고리’, 즉 감염 취약 계층을 취재하며 느낀 것들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미 위기와 상존하고 있었고, 노동은 저렴했으며, 대부분 씻기고, 재우고, 감정을 받아내는 돌봄·상담 노동자였다.

“터질 게 터졌다.” 콜센터 노동자 A씨가 콜센터 집단감염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B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제주도의 한 어머니가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사망한 사건을 두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하루 열두 번씩 손을 씻고, 목이 아프면 감기약을 들이붓다시피 할 정도로 애썼다. A씨는 실적 압박 때문에, B씨는 돌봄 공백이 발생할까 봐 ‘마음대로 아플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연합뉴스

간병인 C씨와 콜센터 노동자 D씨가 일을 하는 이유는 같았다. “이 돈 벌어야 먹고사니까.” 취업은 쉬웠다. 주부 가능, 고졸 가능, 나이 제한도 없었다. 업체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더라도 언제든 그 자리를 메울 ‘긴급한’ 사람들이 있었다. 임금은 최저시급이거나 그보다 낮았다. 편히 잘 수 없었고(간병인),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콜센터 노동자). “기자님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라던 C씨와 D씨의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대부분 돌봄 노동을 했다. 돌봄은 비말이 오가는 밀접 접촉이 필요한 일이었고, 밀접 접촉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높였다. 그 자리에는 늘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고 말해요(미화 노동자 E).” “하루 쉬는 날에는 남편, 아들 밥 해주고 집안일 해야지(간병인 C).” 코로나19로 가정과 병원에서 발생한 돌봄 공백을 메운 것도 여성들이었다.

여성, 돌봄, 노동. 지난 3개월간 코로나19가 훑고 지나간 약한 고리들을 본다. 신광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현실로 인식되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먹고사는 게 급해서, 회사의 갑질로, 감염인에 대한 낙인 때문에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사를 쓰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 58세 요양보호사의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