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4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청년 인재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재섭·천하람 전 후보가 참석했다.

“국민들이 꼴 보기 싫어하는 것만 골라 했다(조성은).” “유권자들과 교감하지 못하는 ‘좀 다른 사람들’이 됐다(김재섭).” “3분짜리 유튜브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당의 얼굴이 됐다(천하람).” 미래통합당의 30대 정치인들이 자당을 평가한 말이다. 이들을 포함한 20여 명은 4월27일부터 ‘청년비상대책위원회(청년비대위)’라는 당내 모임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본래 세 사람은 올해 초 브랜드뉴파티(조성은), 같이오름(김재섭), 젊은보수(천하람)라는 보수정당을 창당하려 했다. 미래통합당에 들어간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는다. 보수 통합 과정에서 창당준비위원회 자격으로 2월17일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했다. 미래통합당에서 조성은씨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김재섭씨는 서울 도봉갑에서 40.49%를 얻어 54.02%를 얻은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천하람씨는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서 3.02%를 받아 낙선했다.

청년 정치인과 보수 정당의 낯선 결합은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입당 후 이들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비판받았다. 포털사이트 기사나 이들의 SNS 게시물에는 종종 ‘문빠’와 ‘일베’라는 댓글이 나란히 달렸다. 인터뷰 도중 이들은 “이방인” “샌드위치”라는 말로 상황을 묘사했다. 이들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아웃사이더이며, 외부자의 시각이 익숙한 인사이더다.

세 사람의 가치관은 ‘미래통합당 주류’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핵심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나, 젊은 보수를 칭하던 ‘일베저장소’ ‘뉴라이트’ 등의 목소리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어 보였다. 반공을 보수적 가치의 1순위로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지상주의나 개발독재와도 선을 그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김재섭 전 후보는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글로벌 스탠더드 보수로 받아들여지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천하람 전 후보는 “보수는 엄격한 심판이어야 하지만, 포용능력이 필요하다. 이기는 사람이 다 갖도록 놔두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보수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경제발전은 안 된다. 그건 가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진단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상식”이었다. ‘국민적 공감대’인 상식과 척을 졌기에 유권자의 선택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막말’ 때문에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이탈했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보기에 막말은 ‘몰상식’의 결과물이며, ‘상식 부재’를 입증하는 여러 근거들 중 하나에 가깝다.

김재섭 전 후보는 세월호 막말의 악영향이 “표면적 패인”이라고 본다. “세월호 사건은 2020년을 사는 우리 국민의 아픔이다. 이렇게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에 교감하지 못하는 (당의) 모습에, 유권자들 사이에서 ‘쟤는 우리와 좀 다르네’라는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선거운동 도중 그가 만난 한 유권자는 그에게 “미래통합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정당이잖아?”라고 냉소했다. 김 전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미온적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미래통합당 당내 모임 ‘청년비상대책위원회’ 조성은 전 선대위 부위원장.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과거 SNS에 올린 게시물 때문에 ‘빨갱이몰이’를 당했다. 지난해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을 언급한 것에 대해 비판하며 ‘왜 김일성은 안 되는 것이지?’라고 쓴 글이 문제가 됐다. ‘여성이 사랑하는 미래통합당이 되자’고 말하자 온라인에서 ‘페미X 꺼져’라고 비난받았다. 당 지도부가 이런 지지자들을 챙기느라 일반 국민들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수 우파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진보, 보수, 여성, 남성(의 지지) 다 있어야 한다. (…) 일반인이 좋아하는 정당이 돼야 하는데, 핑크색 옷 입은 후보를 보면 유권자들이 ‘으~’ 하는 정당이 됐다.”

코로나19 대응만은 여당과 협력했어야

천하람 전 후보 역시 “상식이라는 첫 장벽을 통과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호남에서 출마한 그가 피부로 느낀 문제였다. “꽤 많은 수의 국민이 미래통합당을 선택지에서 빼고 생각한다. 호남과 여성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비전을 이야기한들, 호남 유권자들은 5·18을 폄훼하는 정당을 배제한다. 20~40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미래통합당이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상식이 특정 집단이나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라면, 새누리당을 비롯한 미래통합당 전신 정당들의 성공은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 세월 동안 당내 인사들이 세월호 참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설화를 일으켜도 이 당은 좀처럼 선거에서 지지 않았다. 유독 이번 총선에서 상식이라는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된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흘러 국민들의 가치관이 바뀐 걸까?

미래통합당 청년비대위원들은 탄핵 이후 바뀐 정치 지형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유권자들에게 ‘견제론’이 먹히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파산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는 설명과는 조금 다르다.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대통령을 한 번 끌어내려본 국민들은 권력이 무섭지 않다. 야당이 선거 때 ‘여당 싹쓸이를 막아야 한다’고 읍소하면 ‘그래서? 너희는 뭐 한다고?’라고 반응한다”라고 말했다. 여차하면 직접 정권을 심판할 수도 있다고 믿기에, 굳이 미심쩍은 야당에 힘을 몰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사IN 조남진미래통합당 당내 모임 ‘청년비상대책위원회’ 김재섭 전 후보(서울 도봉갑).

미래통합당을 불신하는 유권자들은 왜 투표를 포기하지 않고 민주당에 투표했을까? 천하람 전 후보는 유권자들이 미래통합당의 문제해결 능력을 의심하는 것을 넘어서, ‘위기 돌파에 방해가 되는 세력’으로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결정적 계기로 코로나19를 꼽았다. “우리 당이 항상 정부·여당을 비판해도 코로나19 대응은 협력했어야 한다. 비판을 하더라도 ‘너 잘못했어. 이렇게 해’가 아니라 ‘이렇게 보완하면 어떨까?’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국민들은 ‘잘하든 못하든 대응은 문재인 정부가 하는 건데, 미래통합당을 제1당으로 만들면 코로나19 대응이 마비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에게 ‘호감 가지 않는 세력’쯤으로 여겨지던 미래통합당이, 코로나19라는 긴급 상황이 닥치자 ‘위험 요소’가 됐다는 듯한 설명이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세 사람은 왜 국민 상식에도, 자신의 가치관에도 맞지 않는 정당에 갔을까?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견제론’에 가까웠다. “나쁜 권력을 없애면 좋은 나라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해 ‘조국 사태’와 서초동 집회를 보며 견제받지 않으면 모든 권력이 나빠진다고 느꼈다.” 다른 두 사람은 자신이 보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철저히 보수적 스탠스를 가진 사람이다. 민주당이 보수 정당이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들이 못하는 이야기가 분명 있다(김재섭).” “미래통합당은 부족하지만 세상을 보는 (나의) 틀이 민주당에 비해 더 보수적이다. 국가의 역할을 보는 관점이 그렇다(천하람).”

하지만 두 답변 모두 이들의 미래통합당행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미래통합당이 이들의 상식과 어긋난다면, 정부 견제나 정치관 실현을 다른 정당에서 추구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들이 대표직을 맡았던 창당준비위원회 내부 인사들 가운데에는, 미래통합당 흡수 결정에 반발해 길을 달리한 이가 적지 않다.

세 사람은 보수 통합 움직임에 기대감과 위기의식을 가졌다고 했다. 여러 세력이 섞이면서 과거 자유한국당의 색채가 묽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치구도에서 거대 양당체제가 더욱 강해지면 (자신들이 소속되었던) 군소 정당의 목소리가 묻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정병국 의원과 박형준 전 선대위원장이 자신을 설득할 때 했던 말을 전했다. “우리 당은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거다. 그런데 싸워야 달라질 거고, 안에서 같이 싸우자”라는 요지였다.

ⓒ시사IN 조남진미래통합당 당내 모임 ‘청년비상대책위원회’ 천하람 전 후보(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의 전망과 장기적 계획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달라졌다’는 평가를 얻지 못했다. 강경 투쟁을 선호했던 황교안 대표 등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미래통합당에 그대로 승계됐다. 막말로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이 공천을 받았다. 세 사람의 입에서는 ‘충분히 싸우지 못했다’는 반성도 나왔다. 이들은 3월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두고 경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비판 메시지는 지금만큼 강경하지 않았고, 큰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천하람 전 후보는 “몸을 너무 사렸던 게 일부 사실이다. 들어오자마자 당에 너무 많은 비판을 하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갑자기 들어온 외부인이 바꾸기에 역량이 부족했다”라고 탄식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청년 정치인의 구실을 묻게 만든다. 미래통합당 주류와 결이 전혀 다르고, 한국의 전통적 보수 세력과도 차이가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일종의 ‘충격요법’이 되어야 했다. 총선 뒤에도 그런 징후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몇몇 보수 유튜버와 누리꾼이 이들의 ‘사상을 검증하자’며 열을 올릴 뿐이다. 이 정당의 청년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 이유가 있을까?

세 사람의 ‘변호’는 대체로 비슷하다. 천하람 전 후보는 “사실 청년이 기성 정치인에 비해 나은 게 별로 없다. 콘텐츠, 인지도 모두 모자란다. 신선함? 그것밖에 없으니까 얼굴마담으로 소비되는 거다”라고 했다. 그가 청년 정치인들의 존재 가치로 꼽은 것은 ‘공감과 소통’이다. “당에 가장 부족한 것이다. 국민이 와서 말 걸기 어렵다. 국민이 아니라 왜곡된 소수의 사람과 소통하니 세월호 막말이 나오는 것이다.” 김재섭 전 후보는 ‘문제의식’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주변에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사회적 커리어를 모두 누린 뒤 훈장처럼 의원 배지를 다는 분들과 다르다.”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댓글로 싸우고, 온라인 국민청원을 하는 방식의 정치가 자라났다. 온라인 소통에 가장 익숙한 게 청년이다. ‘세대기수론’이 아니라 ‘대중성’ 때문에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들은 청년비대위가 미래통합당의 공식 기구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의 전망과 장기적 계획을 이야기하며 세 사람은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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