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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와 그래프도 공포를 자아낼 수 있다. 미국의 셋째 주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328만 건이었다. 여느 때의 30만 건에 비하면 10배 증가다. 무디스는 넷째 주에는 450만 건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1982년 2차 오일쇼크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수치의 5배 정도다. 이 추세라면 미국의 금년 실업률은 30%를 넘는다. 역사상 이런 경험은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시절밖에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비상한 사태를 보여주기 위해 신문의 오른쪽 여백 자리로 치솟는 그래프를 실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매일 경신하는 코로나19 확진자 그래프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의 그래프는 그동안 최악이었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능가하는 기울기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대수롭지 않은 독감으로 여겼다가 갑작스럽게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미국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공포가 ‘경제 공황’으로 이어졌다.

스웨덴의 ‘집단면역’ 전략은 성공할까

방역 전문가들은 인구의 60%가 면역이 생겨야 이 신종 바이러스의 전염이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한국으로 치면 3000만명이 확진자가 되어야 하고 현재의 한국 치사율에 해당하는 1% 정도가 죽는다면 30만명, 이탈리아 치사율로는 300만명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이 나온다. 이런 결론은  R0(R제로)라 불리는 ‘기본감염재생산수(basic reproductive number)’에서 직접 도출된 것이다. R0는 이 세상이 순수한 감염 대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한 명의 감염자가 몇 명을 감염시킬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코로나19의 R0는 보통 2.5 정도(즉 1명이 2.5명을 감염시킨다)로 잡으니 더 이상 감염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를 만들려면 면역자의 숫자가 인구의 60%가 되어야 한다.  

R0는 매우 복잡한 수학적 모델에서 도출되는 수치여서 가정에 따라 매우 다른 값이 나올 수 있고 현실은 순수한 감염 대상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R0는 면역자의 증가에 따라 점점 줄어들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고 감염 즉시 격리할 수 있다면 바이러스는 숙주를 찾을 수 없어 갈 곳을 잃을 것이다.  

R0 개념은 현실의 대응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차피 60%가 감염되어야 끝나는 상황이라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생활하면서 특히 위험하다고 알려진 고령자와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만 치료하는 편이 더 낫다.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라는 이름의 이 전략은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한국처럼 모든 의심자를 추적하고 치료한다면 많은 병상과 의료진이 필요할 것이다), 예전처럼 일하니까 경제적으로도 우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방치되었던 감염자들이 무더기 중증 환자로 나타나자 시민들은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의료진은 살릴 사람과 죽을 사람을 분류하는 윤리 딜레마를 맞아야 했다. 이제 유럽에서도 스웨덴만 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 세계 1위, 개인적 책임을 바탕으로 스웨덴은 과연 이 전략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반이 자택에 격리되어야 한다면 필경 생산은 축소될 테고 생산의 국제화로 예컨대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부품을 조달할 수 없다면 연쇄적으로 생산 네트워크가 마비될 것이다(생산 쇼크). 미국이나 인접 국가의 금융위기가 달러 부족을 불러일으키면 상당히 안정적인 거시건전성을 지닌 국가도 금융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이 지금처럼 방역에 성공해서 V자 회복을 할지라도 여타 국가가 침체에 빠진다면 수출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수요 쇼크).

R0에 의한 추론은 ‘순수한 상태’를 가정했을 때 성립한다. 거리두기, 자가격리만 잘해도 현실의 R0는 낮아져서 현재 우리처럼 상당한 수준의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외국의 영향을 받더라도 미국처럼 대규모 해고를 하지 않는다면 내수는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 해고 없는 지원,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 그리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이러스와 경제의 공포에서 빠져나오는 마지막 활로다.

기자명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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