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성폭력은 구조의 문제”라는 말을 이해하는 동안 나는 내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몇 번이나 깨야 했다. 그중 하나는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모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피해자가 거부하면 사건을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과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일반론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았다. 만약 성폭력이 정말 모두의 문제라면 모두가 사건을 논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어야 했다. 만약 사건을 말하고 결정하는 게 피해 당사자의 유일한 권한이라면 성폭력은 개인의 것이어야 했다.

거부, 동의 모델의 간단한 이해로부터 시작해 성폭력에 대한 이해는 이쯤에서 끝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음 단계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남성 중심 사회의 ‘정상인’에 맞춰져 있는지 깨달아야 했다. 이해가 가지 않고 괴롭던 문제들은 고민을 놓지만 않는다면 의외로 다른 경험의 해석을 연결해나가며 풀렸다.

성폭력 문제는 사회 전체가 가담한 불평등 문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폭력의 해결을 마치 그것(사건) 하나만 없으면 될 몸뚱이(공동체)에서 종양 하나를 도려내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식으로 상상하던 내 사고방식 자체였다. 성폭력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건강’은 불가능한 개념인 것과 같이 ‘그것 하나만 해결되면’ 온전한 나의 공동체라는 개념 또한 이상하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26만명 전원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원이 올라왔을 때, 나는 ‘100인위’를 떠올렸다. 2000년부터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라는 정식 명칭으로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그룹은 성폭력 사건 개요와 가해자 실명을 인터넷상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이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떠도는 이야기로 100인위가 많은 비난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운동 방식이 2015년 이후 폭로를 거의 유일한 무기로 한 성폭력 해결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폭로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비슷한 방식으로 사건들은 미궁에 빠졌다.

한때 나는 폭로가 실패한 이유를 합리성에서 찾았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 합리적인 결정, 가해자의 성실한 처벌 수행 과정을 거치면 될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이 사회에서 잠시 교육을 해 성폭력을 ‘예방’해내겠다는, 이를 통해 가치체계나 권력구도 그리고 정상의 기준, 그 무엇도 바꾸지 않겠다는 사고방식 위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성폭력은 모든 사회구조의 합작으로 벌어진다. 여성 동료를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만 받아들이게 하는 성별이분법과 그것을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 전체의 문제다. 공창의 필요성을 논하고 불법 촬영물이 “자연스러운 사랑”을 보여준다 말하던 남자들은 물론이고, 일부를 비난해 분리하면서도 괜찮은 여자를 ‘꼬셔’ 완전한 남성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궁리하는, 성별이분법 이성애 구조 언저리에서 안전 탑승을 희망하는 자들도 그 구조를 구성한다.

그러니 이제 그 26만명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던 사람인지를 낱낱이 공개하라. 어느 ‘평범한’ 학교 선후배 동기, 회사의 동료, 부하 직원, 상사, 형제, 친척, 아버지, 그리고 이웃의 얼굴로 살았는지 드러나도록. 26만명 혹은 그 이상의 면면을 지금 당장 공개하라. 이를 통해 피해를 ‘셀링’하지 않고도, 종양 덩어리처럼 ‘일부’로 상상되는 성폭력 문제를 이 사회 전체가 가담하고 있는 불평등 문제로 바꾸자. 폭력을 본능과 욕구, ‘남녀상열지사’ ‘정상적인 삶’의 문제로 승인하는 사회 그 자체의 구조를 드러내자.

기자명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