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3월18일 팔레스타인 가자시 알샤티 난민 캠프에서 아이의 체온을 점검하고 있다.

누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재난은 누구에게나 동등하지 않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의 난민과 이주민의 삶은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었다. 법적 체류 자격이 없는 경우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고, 바이러스 검사나 치료 등 공중보건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 중심의 방역 대책들이 ‘경계’에 선 이들의 존재를 소외시킨다.

아시아·태평양 난민권리네트워크(Asia Pacific Refugee Rights Network· APRRN)는 이 상황을 매우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국제보건기구(WHO)와 각국의 방역 당국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감염자와 접촉을 피하며 만약 증상이 있으면 의료진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밀집된 수용시설에 기거하는 수백만명의 난민과 이주민들은 감염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수용시설은 대개 위생시설과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깨끗한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이들이 국가 의료체계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조치도 난민이 처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방글라데시 남동부에 위치한 쿠투팔롱 난민 캠프의 경우 13㎢ 공간에 60만명이 모여 있다. 이런 곳에서 거리두기는 선택 가능한 조건이 아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모범 사례를 보였다. 3월 초 외교부와 법무부는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외국인들이 전국 124개 보건소와 46개 민간 의료기관에서 무료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한 확진 여부를 검사할 때도 미등록 체류자로 신고되지 않도록 했다. 또 이 사실을 이주민들에게 적극 홍보했다. 국적이나 체류 자격으로 보건 서비스를 차등적으로 제공할 경우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 정부는 알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으로 국제사회에서 널리 호평받을 만한 정책이었다.

난민캠프 등에 의료 접근성 높여야

그러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국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문제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인종차별을 증폭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구분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이제 어떤 국가도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국경을 닫고 이주민을 가해자로 모는 고립주의 대응은 실질적인 방역이 될 수 없다. 이런 방식은 난민과 이주민이라는 가장 취약한 집단을 또다시 위험에 빠뜨리게 할 뿐이다. ‘예방적 조치’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으로서 망명을 신청할 권리, 건강에 대한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방역은 결국 모든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난민과 이주민이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방역 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난민 캠프, 구금시설 및 거주지에도 공공 의료체계 접근성을 높이고, 이 과정은 난민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뒷받침해야 한다. 취약한 이들이 감염병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결국 사회의 몫이다.

※ 아시아·태평양 난민권리네트워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28개 국가에서 난민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400여 개 시민단체와 개인들의 연대 기구다. Asylum Access, Organization for Refuge, Save the Children, Migration Forum in Asia 등이 가입해 있다.

기자명 템바 루이스 (아시아·태평양 난민권리네트워크 사무총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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