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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23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전의 이슈는 분명했다.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방역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염병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력 후보 두 명 중 전염병 전문가는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나바로였다. 그는 에볼라와 조류독감 전문가였고 ‘유엔 에볼라 대책 조정관’을 지냈다. 투표 결과는 전체 194개국의 유엔 회원국 중 133표를 얻은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55)의 승리였다.

그는 에티오피아 보건장관과 외무장관을 지냈다. 보건장관 시절 에티오피아의 보건 인프라 확충과 말라리아 퇴치에 공헌했지만, 2008년 콜레라 발병 때 방역은 외면하고 외부 지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무총장 선거 당시에도 이 문제가 불거졌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중국의 막대한 물량 공세 약속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권 출범 후 유엔 기구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 액수가 대폭 줄었다. WHO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거브러여수스를 사무총장 후보로 밀면서 WHO 기금으로 매년 1조원씩 10년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를 전폭 지원했다. 거브러여수스의 출신국 에티오피아는 중국의 경제적 속국이나 다름없다. 2000년 이후 중국의 투자 액수가 121억 달러(약 14조원)에 이르고 2016년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지부티까지 철도 건설에 투입된 40억 달러의 중국 자금 역시 고스란히 에티오피아 정부의 빚으로 남아 있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만들기’는 중국의 거듭된 유엔 기구 장악의 일환인 셈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는 노골적인 친중국 행보로 눈총을 받았다. 사무총장 취임 다음 날 첫 일성으로 타이완을 WHO 행사에서 제외하는 ‘하나의 중국 발언’을 한다든지,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를 친중 인사라는 이유로 WHO 친선대사로 임명했다가 회원국들의 항의를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그의 행태를 보면 중국 당국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에는 주로 중국 자료에만 의존해 사람 간 전염이 안 된다는 등 위험성을 경시하는 발언을 해왔다. 국제 여론에 떠밀려 1월30일 ‘국제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교역과 이동을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못 박았다. 국제 교역 중단이 초래할 위험성을 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중국의 사업에서 다른 나라들이 떠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는 말을 놓고 보면 자본 철수를 우려하는 중국 당국의 속내를 대변했다는 혐의가 더 짙다. WHO의 안이한 대처로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에 빠진 뒤에도 ‘국제사회가 중국에 빚을 졌다’는 터무니없는 인식을 보여 ‘중국 수석대변인’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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