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대부분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면 경계심을 갖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포즈를 취하거나 거부한다. 포즈를 취하는 것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일종의 연기이자 가장이다. 심지어 이를 사진적 죽음의 순간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사진을 찍는 순간은 본래의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남는 것은 연기된 자아 혹은 가장의 순간이다.
연예인들은 그런 포즈에 익숙해서 늘 연기를 한다. 그렇지 않은 순간을 찍기 위해 파파라치들이 활동한다. 정치인이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권력자, 재력가 등 저명인사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연기를 한다. 물론 연기 한다는 것을 의식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최근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진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찍힌 사진들이다.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하다 찍힌다. 사진기자들이 투명한 연결통로가 잘 보이는 곳에서 성능 좋은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포착한 사진일 터이다.
그 사진 아래에는 찍힌 때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는 설명과 함께 현안이 되는 내용이 쓰여 있다. 가령 요즘 같으면 장모가 연루된 사건에 관한 설명이 달린다. 물론 윤석열 총장이 찍힌 사진은 그 사건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사진은 사실 의미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기보다 단지 글로 쓰인 기사의 내용을 실감나게 하기 위한 용도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사용하는 사진은 사건 자체에 대한 직접적 정보를 담은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시선을 끌기 위해서거나, 때로는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 듯 보이기 위해 사용된다. 검찰총장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사진도 그런 전형이다.
윤석열 총장의 사진이 의미하는 것
윤석열 총장의 사진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카메라가 낮은 위치에서 그를 찍고 있으며, 그가 거의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특별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때문에 피사체인 윤석열 총장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뭔가 권위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대부분의 사진에는 창틀이 사선으로 프레임 속에 배치되어 윤 총장의 시선 방향과 엇갈리고 겹치면서 사진 자체를 좀 더 동적으로 만든다. 사진 속에서 윤 총장은 앞으로 걷다가 창밖을 우연히 보거나 살짝 찌푸린 얼굴로 뭔가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때그때 현안과 뭔가 관련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런 사진이 자주 찍히다 보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처음 몇 번은 몰라도 나중에는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면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연기를 할 수도 있다. 카메라 앞의 포즈란 일종의 자기방어, 혹은 자기과시적 무의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확인할 수 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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