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한 임세원 교수의 영정.

2018년 마지막 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어. 자신의 환자와 상담을 나누던 정신과 의사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환자가 별안간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고 말았던 거야. 이 사건은 그즈음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와 맞물려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은 고인의 가족이겠지. 장례식에서 유족 대표인 여동생은 이런 당부를 남긴다.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임세원 교수는 이런 글을 남겼어.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분이 다른 의사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라고 되뇌면서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 조문객 중에는 그를 거쳐 간 환자와 그 가족들이 많았다고 해. 어떤 환자는 이런 편지를 영전에 바쳤다는구나. “선생님 덕분에 시들어가던 제 마음이 희망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이라고 부르지만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을 겪는다. 바로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미친놈’이라는 욕설이 대변하는 사회적 낙인이지. 겉보기에 멀쩡해서 병은 더욱 커지고, 선명하고 뜨거운 낙인이 두려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병을 숨기며 시들어가게 마련이야.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을 돕는 것을 ‘나의 일’로 삼아 치유의 여정을 힘겹게 헤쳐가는 분들이지. 임세원 교수 얘기를 하다 보니 또 한 분, 우리 역사에 작지 않은 이름으로 남은 한 정신과 의사의 사연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는 배기영(1953~2015)이야.

그는 한국전쟁이 채 끝나기 전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에서 태어났어. 문재인 대통령이 역시 피란민 수용소에서 태어났으니 ‘동향’인 셈이구나. 흠잡을 데 없는 범생이 그 자체였던 배기영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72학번으로 입학했어.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던 그는 전공으로 정신과를 택하는데, 의사가 되는 길 초입에서 심각한 갈림길에 서게 된다. 미국에 이민 가 있던 누나의 초청으로 모든 가족이 이민을 떠나기로 한 거야. 배기영은 미국에서도 의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따두었기에 얼마든지 이국 땅에서 새롭고도 유복한 인생을 꾸릴 수 있었지. 하지만 그는 누나와 가족들의 끈질긴 권유를 뿌리치고 혼자 한국에 남아. “한국에서 의사로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거였지. 가족들이 얼마나 답답해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뭐라고 했을지 아빠 귀에 쟁쟁하구나. “이놈아. 남들은 밀입국이라도 해서 들어가려는 미국을···.” 당시 한국 사람들은 ‘미국 들어간다’는 기묘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썼단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그는 자신의 병원을 열기로 결심했어. 그 과정이 상당히 남달랐다고 해. “마음이 힘들어서 온 사람들인 만큼 공간 자체가 그들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환자가 누웠을 때 가장 편안한 높이, 환자와 의사가 가장 소통이 잘되는 거리, 어린 환자를 위한 별도의 의자 등등 모든 것을 환자에 맞춰 직접 디자인했고 그대로 제작해줄 것을 요구했다(최규진, 〈세상의 배경이 된 의사〉). 그 덕분에 존경하는 사촌형을 돕겠다고 선뜻 나섰던,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사촌동생은 평생 처음 겪는 난공사에 진땀깨나 흘렸다고 해. 그렇게 환자들을 위해 맞춤·세팅된 병원에서 그는 ‘마음을 고치는 의사’로 성장해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제공2015년 세상을 떠난 정신과 의사 배기영은 청구성심병원의 노조 탄압을 산업재해로 이끌어냈다.

육체의 병이 그렇듯 마음의 병에도 사회적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 한국 전염병 연구의 선구자 전종휘 박사가 전염병을 두고 ‘빈민병’이라 일컬었던 것처럼 당시 한국 사회가 뿜어낸 폭력성과 야만성은 숱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병을 일으켰지. 이를테면 영화 〈1987〉이나 〈변호인〉에 등장하는 살인적인 고문 피해자들을 떠올려보렴. 그 몸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이 온전했겠니. 의사 배기영은 문국진이라는 고문 피해자를 치료하면서 법정 투쟁의 동반자로 나섰어. 정보기관이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린 나머지 임신 중인 아내의 목을 졸랐던 문국진의 병증을 두고 배기영은 “심인성 편집증적 정신병”임을 밝히고, 해외 고문 피해 연구 사례까지 꼼꼼히 찾아내 법정에 들이밀었어. 결국 고등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리게 되지. 이건 결코 문국진 개인에게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고 배기영 역시 문국진만의 주치의가 아니었어. 뒤틀려버린 역사를 간신히 곧게 펴는 작업이었으며 그 주름에 휘말려 누더기가 돼버린 사람들을 회생시키는 ‘치료’였으니까.

한총련 수배자 건강진단 나서기도

경찰이나 정보기관원이 퍼붓는 육체적 고문은 역사의 물결에 밀려 점차 과거지사로 떠내려갔지만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지.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즈음 청구성심병원에서 발생했던 노조 탄압 사례야. 병원 측은 온갖 저열한 수단을 동원해 노조원들을 괴롭혔단다. 의자도 주지 않고 회사 측 사원들이 가로막아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감시까지, 별의별 짓을 다했지. 이럴 때 사람이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마련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괴롭힘으로 발생한 정신적 피해는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어려웠어. 노동자 편에 서는 의사는 더더욱 드물었고 말이다. 배기영은 통렬하게 분노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 조합원들은 장시간 스트레스를 받아왔기에 3개월 이상 안정과 전문적 치료의 필요가 있다.” 배기영은 조합원들을 끊임없이 상담하고 치료하고 소견서를 쓰고 언성 높여 완강한 반대자들에게 맞섰어. 마침내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조원 8명에 대한 산업재해가 인정됐지. 전에는 당연히 없었고 그 후로도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얻어내기 힘겨웠던, 그래서 기념비적인 성과였어.

배기영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어.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한 다짐, 전 가족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데 혼자 남아 의사가 필요한 이웃을 돕겠다던 각오는 자연스럽게 그 스스로를 ‘문제적’ 의사로 만들었어. 다들 노숙자 냄새 난다고 코 싸매고 그들을 위한 자립시설이 동네에 세워지면 기를 쓰고 반대하던 때, 노숙자들의 정신건강을 챙기겠다고 서울역으로 향했던 배기영. 학생회 간부로 선출된 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라는 단체에서 공개 탈퇴 선언을 하지 않으면 직통으로 수배자가 되던 시기, 그 수배자들을 위한 건강 진단을 해주자고 나섰던 배기영은 실로 우리 사회, 우리나라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였다.

〈세상의 배경이 된 의사〉의 저자 최규진에 따르면 배기영은 딸들에게 이런 농담을 했단다. “배기영 이름을 빨리 발음해봐. 배경이 되지? 아빠는 세상의 배경 같은 사람이 될 거야.” 대개 사람들은 별을 꿈꾸고 가운데를 지향하며 주인공을 선망한다. 하지만 그 모두가 빛나고 돋보이며 태가 나기 위해서는 배경이 필요하지. 어두워서 깊고, 눈에 띄지 않아서 소중한 의사 배기영 그리고 임세원 같은 이들은 그런 배경으로 살았던 거다. 의사라는 직업의 ‘사’는 스승 사(師)를 쓴다. 어쩌면 스승은 제자들의 배경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제자들이란 환자들이고 우리들이고 우리 사회가 되겠고 말이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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