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지난 1월이었다. 집회 도중 인근 음식점 사장이 사회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우리 집 앞에서 난리예요!” 사회자는 “이 아파트에 사는 ○○○ 회장이 직원 임금을 떼먹었어요. 양해 부탁드려요”라고 답했다. 그러고도 그 사장은 한참을 임금 떼인 노동자들을 향해 화를 내고서야 돌아섰다. 원인을 제공한 사용자보다는 눈앞에 농성하는 노동자가 먼저 보이는 탓이었을까. 그때만 해도, 말로 따지는 걸 넘어 ‘소장’으로 응수하는 제3자를 보게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와 간부 2명 앞으로 ‘146명에게 1인당 84만원씩 총 1억2264만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손배)청구 소송 소장이 도착했다. 146명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일진다이아몬드 본사 건물에 입주한 상가 임차인과 직원들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본사 건물 로비를 점거한 것을 두고 소송을 걸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구체적인 피해는 통행 방해 외에 ‘공포감’ ‘혐오감 유발’ ‘소음’ ‘사생활 자유 침해’ 등이었다. 예상치 못한 민사소송 통보를 받은 노조는 소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 사람들도 노동자잖아요.”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회사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충북 음성에 있는 일진다이아몬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공장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어려운 외진 곳에 위치한다. 공장 안에서 200일 넘게 농성을 해도 노동자들의 요구는 공장 문턱을 쉬이 넘지 못했다. 책임자는 도통 만나볼 수조차 없었다. 결국 본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본사를 찾은 죄’로 소송이 불어났다. 건물주 격인 ‘일진디엔코’는 경비용역 비용과 시설관리 유지비용이 들었다며 1억8900만원의 손배 소송을 걸었다. 이 밖에도 본관에 스티커를 붙였다며 1100만원, 주거침입이라며 2500만원의 가압류 2건, 본사 출입금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이미 음성 공장에서 파업을 한 데 대한 손배 5억원이 청구돼 있었고,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2건이 신청된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그저 생존을 위협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뿐이다. 공장에는 30년 동안 노동조합이 없었다. 현장직 270명, 관리직 140명 규모의 사업장은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회사’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런데 회사는 번번이 사정이 어렵다며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마스크와 장갑도 제대로 갖춰주지 않았다. ‘유해물질이 튀어도 휴지로 닦으라고 하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했다.

노조 결성 이후 회사는 단체협약 맺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사이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파업에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조합원에 대해서만 직장폐쇄라는 방침 아래 공장은 계속 돌아갔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손배 청구 3건, 가압류 2건, 가처분 3건이 몰아쳤다. 3월10일 기준으로 파업 259일째, 직장폐쇄 212일째다.

146명의 상가 점포 직원들에게 받은 손배 소장의 쓰라림을 다독여준 것은 농성과 집회를 찾아 함께 분노해준 시민들의 응원이었다. 매주 수요일 열리던 집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2월 중순부터 무기한 중단한 상태다. 손배를 포함한 민사소송이 밀려든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본사 앞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의 연대 행동은 장기 투쟁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조합원들에게 힘이 됐다. 작은 사회적 관심이라도 줄어들면 회사와의 교섭이 쉽지 않게 된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고통이다.

기자명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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