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감염질병과 언론 보도’ 토론회에서 김철훈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이 인사하고 있다.

시작은 이름이었다. 1월27일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를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용을 권고한 명칭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수정했다. 이튿날 〈조선일보〉는 ‘靑 우한 폐렴이란 병명 모두 바꿔… 네티즌, 中엔 왜 저자세로 나가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잃을까 봐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내용이었다. 근거는 온라인 댓글 세 개였다.  

〈조선일보〉는 비슷한 내용을 담은 기사와 칼럼을 연일 내보냈다. 정부가 ‘우한 폐렴’을 쓰지 않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명칭을 쓰는 것이 ‘친중’의 증거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때로 정보를 취사선택해 전달하기도 했다. 2월4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괜찮고… 우한 폐렴은 쓰지 말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는 WHO가 질병 이름에 특정 지역·사람·동물 이름 등을 쓰지 못하도록 규정한 때가 2015년이라는 점은 언급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약 100년 전인 1921년 첫 사례가 보고된 뒤 수십 년 동안 풍토병에 머물렀기 때문에 명칭이 지명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WHO에서 감염병 정식 명칭을 ‘COVID -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라고 공식 발표한 2월12일에도 〈조선일보〉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한 〈조선일보〉 기자는 만약 이번 감염병이 중국 우한이 아닌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됐다면 “현 정부는 너도나도 앞다퉈 이번 병명을 ‘오사카 폐렴’이라고 못 박고 일본 헐뜯기에 나서지 않았을까”라며 “중국을 극진히 배려하는 것의 반만큼 일본을 대할 수 없나”라고 적었다.

 

한 언론사의 ‘고집’은 보수 정당으로 확장됐다.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발병 원인이나 치료 방법에 대해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자리는 감염병 이름을 둘러싼 논쟁으로 대체됐다. 2월5일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은 코로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국회대책특별위원회를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특위를 구성하기까지 진통을 겪었다. 당시 미래통합당이 특위 이름에 ‘우한’을 넣어야 한다며 고집했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의 지지세가 강한 대구에서 신천지 확진자가 대규모 나온 다음 날이자 첫 사망자가 발표된 2월20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회 코로나19 대책특위’가 출범했다.

보수 언론이 이름 하나로 불을 지핀 반중 정서는 ‘중국 봉쇄론’으로 발전했다. 〈중앙일보〉는 2월24일 이례적으로 1면에 사설을 실었다.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는 제목이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中 감염원 차단했으면 재앙 없었다, 누가 왜 열었나 밝히라’는 사설을 실었다.

3월1일 방송된 KBS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 패널로 나온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일부 언론의 철지난 중국 봉쇄론을 반박했다. “자꾸 중국을 막느냐 마느냐라는 친중 프레임에 갇혀버리니까 몰려드는 환자를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한 절박함은 묻혀버렸다. 열심히 노력하는 의료인들을 정책 프레임에 갇히게 했다. 그건 정말 언론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역학회와 대한예방의학회 등도 일찌감치 중국 봉쇄론의 실효성을 반박했다.

ⓒ연합뉴스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최대집 의협 회장(왼쪽)이 ‘우한 코로나19’ 대책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이틀 뒤 〈중앙일보〉는 ‘의료 사회주의 김용익 사단, 이 중 코로나 실세는 靑 이진석’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재갑 교수를 ‘비선 전문가’로 낙인찍었다. 2월24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오판하도록 한 비선 전문가들이 방역 실패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은 최대집 회장을 만나 “구체적으로 누가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비선 역할을 했나”라고 물었다. 2005년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을 본뜬 ‘자유개척청년단’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최대집 회장은 비선 전문가로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 이재갑 교수 등을 지목했다.

같은 날 이재갑 교수는 SNS에 ‘전문가 의견이 비선 자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하되다니…. 이제 물러나겠다’라는 글을 올렸고, 정부에 대책 자문을 해오던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도 해체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에 퍼진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진료 방식도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등 의료인들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과정 중에 범학계 대책위에서 제안되었다.  

감염병 국면에서 드러난 언론의 취약함

신뢰는 언론의 주요 자본이다. 하지만 신종 감염병 국면에서 언론은 자신의 취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은 2월21일 열린 ‘코로나19 감염증 확산과 한국 사회의 위기소통’ 세미나에서 2월 첫째 주에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조사기관 한국리서치)를 분석해 발표했다. 이 중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는 각 공적 주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문항은 눈여겨볼 만하다. 4점 만점에 국립중앙의료원(2.93점), 질병관리본부(2.89점), 공공의료기관(2.80점) 순서로 이어지는 그래프의 맨 마지막에 언론(2.36점)이 있다. 전체 7개 공적 주체 중에서 언론은 2.5점을 넘기지 못한 유일한 곳이다.

최근 일주일 동안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와 뉴스를 얼마나 자주 직접 찾아보았느냐고 물었을 때는 절반에 가까운 49.6%가 ‘자주 찾아보았다’로 답했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탐색했을 때 알고 싶은 내용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는지 묻자 ‘부족하였다’라고 한 사람은 30.7%에 달했다. 수십 만 건에 달하는 기사에도 불구하고 국민 3명 중 1명은 정작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답했다. 충족하지 못한 정보의 종류를 묻는 질문에는 확진자 이동경로(14.1%), 감염 시 치료방법(12.3%), 발병 원인(10.2%) 순서로 응답했다.

언론의 자정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2년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가 협력해 국내 최초로 ‘감염병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준칙은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감염병 보도는 해당 병에 취약한 집단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예방법 및 행동수칙을 우선적·반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경마식 보도와 어뷰징으로 준칙이 흔들렸다. 그리고 언론은 여전히 재난상황에서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를 외면한 채 정치적 논쟁에 매달리는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내 최대 언론단체인 한국기자협회는 2월21일 공식 병명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 등을 담은 ‘코로나19 보도준칙’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가 변함없이 이어지자 닷새 뒤 〈기자협회보〉를 통해 ‘코로나19 보도, 과도한 정치공세 삼가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3월4일에는 ‘선 넘은 조선일보의 코로나 보도’라는 제목의 사설로 특정 언론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조선일보〉 기자협회 지회는 ‘선 넘은 기자협회보 유감’이라는 제목의 성명으로 맞받아쳤다. 〈조선일보〉와 미래통합당은 3월12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우한 코로나’를 사용하고 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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