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콩고민주공화국에 사는 한 소녀가 2019년 7월13일 에볼라 바이러스의 백신 접종을 맞고 있다.

‘질병 엑스(Disease X).’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2월,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대비해 우선적으로 연구·개발해야 하는 감염병 목록에 낯선 이름을 추가했다. 수학에서 미지수를 X라고 쓰듯 ‘알지 못하는 병’이라는 뜻이다. WHO는 인간을 감염시켜 국제적으로 유행할 위험이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병원균을 ‘질병 엑스’라 부른다. 메르스, 에볼라, 지카 등 이미 사람들을 위협했던 감염병에 이어 이 목록에 여덟 번째로 이름을 올렸던 ‘질병 엑스’는 2020년 코로나19(COVID-19)라는 이름으로 인류 앞에 나타났다. WHO는 어떻게 이 신종 바이러스가 불현듯 들이닥칠 것을 예상하고,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걸까.

CEPI(세피)라는 기구가 있다. ‘The 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전염병예방혁신연합’이다. 백신을 개발해 미래에 출현할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 2017년 설립됐다. 노르웨이·일본·인도·독일 등 각국 정부가 돈을 댔고, 빌 앤드 멀린다 게이트 재단도 기금을 출연했다. 빌 앤드 멀린다 게이트 재단을 만든 빌 게이츠는 감염병 예방백신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정부와 민간, 공공 영역을 아우르는 백신 분야의 국제 연합체인 CEPI는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직접 연구를 수행하기보다는 적합한 연구기관이나 기업에 후원금을 투자하는 모터 구실을 하는 식이다.

CEPI의 미션 중 하나는 ‘질병 엑스’에 맞서 제시간(Just in time)에 백신이 완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백신을 만들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백신 개발에는 보통 10년 이상 걸리고 그사이 그 감염병의 유행이 끝나버린다. 2002년 사스와 2012년 메르스(첫 발생 기준)가 이러한 경우다. 개발 도중 유행이 멈추면 백신을 완성하기도 어렵다. 백신 개발 단계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임상시험 3차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효능을 점검해야 하는데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이 시험이 불가능하다. 기업 처지에서 더 이상 시장성이 보이지 않는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계속하기 힘들다. 이처럼 기존 접근법으로는 코로나19처럼 긴급 상황에 투입할 백신을 개발할 수 없다.

CEPI의 새로운 전략은 ‘플랫폼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백신은 바이러스를 직접 다루는 방식이었다. 반면 플랫폼 테크놀로지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DNA 또는 RNA)을 사용하는데, 이미 개발돼 있는 백신 플랫폼에 이 유전물질만 새로 넣는 식으로 만든다. 단순화하자면 안전성이 검증된 그릇(플랫폼)이 있고, 여기에 지카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넣으면 지카 백신이, 코로나19의 유전물질을 넣으면 코로나19 백신이 되는 개념이다.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AP Photo2017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백신 개발을 위한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이 설립됐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록적 속도”

1월23일 CEPI는 플랫폼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자금을 지원할 대상을 발표했다. DNA 백신을 개발하는 ‘이노비오’와 RNA 백신(mRNA 백신)을 개발하는 ‘모더나’가 선정되었다. 둘 다 플랫폼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이다. 실제 두 기업은 놀라운 속도로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월24일 모더나는 코로나19 RNA 백신 후보 물질을 완성해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기관에 보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공개되고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42일 만이다.

바이러스 연구자인 남재환 교수(가톨릭대 생명공학부)에 따르면 “기록적인 속도”다. 백신은 중화항체(면역 물질)를 잘 유도하는 후보 물질을 개발한 다음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시험을 거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1차, 2차, 3차까지 마치면 보건 당국의 승인이 떨어지고 상업화 순서로 이어진다(〈표〉 참조).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 후보 물질에 대한 임상시험 1차는 4월 시작될 예정이다. 3월4일부터 미국 시애틀 지역에서 이 테스트에 참여할 지원자 45명을 모집하고 있다. DNA 백신 개발을 맡은 이노비오도 비슷한 스케줄을 예고했다. 이 기업들이 신속하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는 건 미국 보건 당국이 독성시험을 면제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RNA 백신이나 DNA 백신에 사용되는 플랫폼의 안전성은 경험적으로 증명이 된 거예요. 지금까지 그 플랫폼으로 다른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서 임상시험을 많이 했거든요. ‘급한 상황에서 (동물 대상) 독성시험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 빨리 사람 대상으로 보자’ 이렇게 된 거죠.”

여기까지는 유례없이 신속하게 왔지만 임상시험 1차부터 완성까지는 또 기나긴 여정이 남아 있다. 통상적인 임상 1차, 2차를 마치는 데 2~4년, 3차를 마치는 데 3~5년이 걸린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는 임상시험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안들이 논의 중이다. 인체에 투여하는 약물이므로 부작용 등을 보는 안전성 기준을 양보할 수는 없다. 대신 추적 관찰 기간을 줄일 수는 있다. 일반적으로 상용화되는 백신은 효능이 몇 년 이상 유지돼야 하지만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에 투입되는 백신은 몇 개월만 효능이 지속돼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2월11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본부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를 막을 첫 번째 백신이 18개월 이내에 준비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상의 시나리오일 때 가능한 일이다. 마치 몇 주 내로 코로나19 백신이 완성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뉴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CEPI가 가장 바라는 목표는 코로나19 유행이 끝나기 전에 1·2차 임상시험을 마치고 바이러스 감염이 계속되는 지역에서 곧바로 임상 3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링백시네이션(ring vaccination·포위종두)이라고 한다. 환자가 발생하는 지역 주위에 사는 주민들에게 새로 개발한 백신을 예방접종해 효과가 있는지 보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에볼라 백신 ‘에르베보’가 이 방식으로 임상시험 3차를 마쳤다.

변이가 쉽게 일어나는 특성이 문제

물론 에볼라 발생 추이는 코로나19와 다르다. 1976년 콩고에서 처음 출현한 에볼라는, 수십 년간 종종 발생하며 아프리카 나라들을 위협했지만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3년 재유행한 에볼라는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서 유럽, 미국에도 침투하며 무시무시한 위력을 떨쳤다. 이런 배경 때문에 2013년 재유행 이전에 임상 2차가 마무리된 백신 후보가 있었고 2014년 재빠르게 발생지에서 임상 3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에볼라 백신은 이후 백신 개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신 후보가 개발되면 임상 1차, 2차를 끝낸 뒤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상황(감염병 유행)이 발생하면 바로 그 지역에 접종을 해서 3차를 하죠. 1·2차를 통과하면 안전성은 확보된 거니까. 거기서 3차를 하면 발생 지역 상황을 통제하면서, 백신 효능도 검증할 수 있잖아요(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 이는 CEPI가 지금은 잠잠하지만 언젠가 다시 유행할지도 모를 메르스 같은 감염병에 대해 짜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도 있다. 그중 하나가 돌연변이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가 쉽게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왕관 형태의 돌기인 스파이크 단백질에 변이가 일어나 그 부분의 모양이 바뀌면 이미 개발된 백신은 무용지물이 된다. 독감의 원인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변이가 빈번하게 생긴다. 독감 예방주사를 매년 맞아야 하는 까닭이다. WHO 산하에 있는 ‘세계인플루엔자 감시 반응 시스템(GISRS)’에서 해마다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예보하면 제약회사들은 그에 맞춰 백신을 출시한다. 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고 아예 인간 세계에 눌러앉았기 때문에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백신 개발 자체가 소용없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백신 완성은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고 그사이에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거라는 예상이다. 송만기 사무차장은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몇 개월 만에 사라질 수도 있고, 독감처럼 남을 수도 있어요. 코로나19가 조기 종식될 거라 예상하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계속 돌아온다면 그때는 방법이 없잖아요. 제일 좋은 방역 대책은 모든 시나리오에 맞게 대응책을 짜는 거죠.”

아직까지 플랫폼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상용화 단계까지 간 백신은 없다. 코로나19 DNA 백신과 RNA 백신이 완성된다면 최초의 기록이다. ‘질병 엑스’ 코로나19는 여러 영역에 걸쳐 인류에 큰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전염병 퇴치하는 백신의 과학

ⓒReuter코로나19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돌기)

백신은 전염병을 퇴치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치료제(코로나19의 경우 항바이러스제)는 이미 병에 걸린 환자를 낫게 하지만, 백신은 사전에 감염을 막고, 감염원이 늘어나는 것을 차단한다. 백신이 직접 병원균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 백신은 우리의 면역체계가 해당 병원균을 물리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놓는 개념에 가깝다. 18세기 에드워드 제너가 최초로 백신을 발견했던 천연두는 1980년 공식적으로 근절됐다. 신대륙을 초토화했던 가공할 만한 전염병 천연두가 역사에 안녕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백신으로 인허가되려면 이를 인체에 접종했을 때 체내에서 ‘중화항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몸속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포에 침투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왕관 모양으로 돋아난 돌기를 세포 표면에 있는 리셉터(receptor·세포 수용체)와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세포에 들어온다. 이 돌기를 ‘스파이크 단백질(〈그림〉 참조)’이라고 부른다. 중화항체는 바로 이 스파이크 단백질에 달라붙어 바이러스가 리셉터를 통해 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제조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백신 종류가 있는데 사백신(死vaccine)이 대표적이다. 쉽게 설명하면 죽은 바이러스를 몸속에 넣어주는 것이다. 죽은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독성은 없지만 껍데기는 일반 바이러스와 동일하다. 아주 단순화해서 중화항체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면역 시스템을 통해 외부 침입자를 인지한 면역세포는 이 바이러스의 모양에 맞춘 중화항체를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또 면역세포 가운데 일부는 면역 기억세포(메모리 B세포)로 전환된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면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후 실제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오면 이 훈련된 면역 기억세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막는 중화항체를 재빠르게 만들 수 있다.

사실 백신을 개발할 때 중요한 부분은 바이러스 몸통 전체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세포의 리셉터와 결합하는 부분이다. 코로나19로 치면 돌기인 ‘스파이크 단백질’이다. 사백신처럼 바이러스를 통째로 넣지 않고, 이 스파이크 단백질만 인체에 들어와도 면역세포는 똑같은 모양의 중화항체를 만들어낸다.

플랫폼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개발되는 코로나19 백신은 바로 이 스파이크 단백질에만 집중한다. 코로나19의 유전자 가운데 스파이크 단백질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출해서 이미 개발돼 있던 백신 플랫폼에 집어넣는다. 그 뒤 이 백신을 인체에 주입하면 플랫폼 백신에 들어 있는 유전물질이 스파이크 단백질로 발현된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주문제작하는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면 백신 후보 물질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다. 사백신 같은 전통적인 백신은 배양기라는 거대한 설비에서 백신 후보 물질을 배양해야만 한다. 반면 RNA(유전자) 백신의 경우 실험실에서 인공적인 조합을 통해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

남재환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이번 위기를 잠재우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칠 다음 감염병 위기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이번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앞서 진행됐던 사스와 메르스 백신 연구의 덕을 보고 있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백신 후보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때 얻은 지식이다. 사스와 메르스 백신은 완성에 이르지 못했지만 개발 과정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을 밝혀주는 수많은 논문이 나왔다. 코로나19는 그 토대 위에서 보다 빠르게 백신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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