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비를 받으며 지냈다는 한 시민은 7년간 없는 돈을 아껴서 넣은 암보험을 깼다. 코로나19로 피해가 큰 대구에 보내달라고 했다. 광주 지역 43곳의 행정기관과 시민·사회단체는 “대구 확진자들을 광주에서 치료하겠다”라는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19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가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해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며,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불안과 혐오 속을 살다 만나는 이런 순간은 우리에게 작은 위로를 준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왜 협력하는가.
이타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진화 과정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세계적인 게임이론 연구자인 최정규 경북대 교수(경제학)가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스테디셀러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다. 인간은 자신의 혈연이어서, 혹은 앞으로 계속 봐야 할 사이라서 협력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돕는다.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기에 협력하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기도 한다. 경제학은 ‘이기적인 합리적 개인’을 전제하는데, 시장 자체가 협력이라는 이타심 없이는 돌아가기 어렵다. 협력이 살아남은 것은 인간이 집단 간 경쟁을 해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런 얘기를 ‘진화적 게임이론’이라는 렌즈로 풀어내는데, 흥미롭지 않을 도리가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불안과 우울감이 확산되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되고, 거리는 썰렁하며, 마스크 낀 사람들끼리 서로를 불신하는 와중에도 우리가 서로 돕는 종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를 ‘가장 취약한 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일도 결국 협력이라는 이타심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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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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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메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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