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Monde 갈무리라비제 지아르 상사(아래)는 프랑스 트랜스젠더협회 대표를 겸하고 있다.

프랑스는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허용하는 국가다. 네덜란드 헤이그전략연구소(HCSS) 등의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군 입대를 허용하는 나라 중에서 프랑스는 진보적인 축에 속한다. HCSS는 세계 53개국 가운데 프랑스가 열 번째로 성소수자 군인에게 우호적이라고 밝혔다(2014년). 프랑스 국방부는 2018년 3월 ‘군대 내 성전환 절차’라는 공식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 자체는 논란이 되지 못한다. 10여 년 전 ‘수술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를 두고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1988년부터 20년간 공군에 복무한 델핀 라비제 지아르 상사의 사례다. 라비제 지아르 상사는 2007년 호르몬 대체요법으로 성전환을 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군은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프랑스 공군의 프레데리크 솔라노 언론담당관은 2009년 〈라 리베라시옹〉 인터뷰에서 “(라비제 지아르 상사는) 여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여군 상사”라고 말했다. 공군은 그에게 여군 유니폼과 이름이 바뀐 군 증명서 등을 지급하고 여군으로 복무하도록 했다.

문제는 군이 아니라 법이었다. 프랑스는 호적상 성별을 법원에서 바꾸는데, 2009년 8월 낭시 지방법원은 라비제 지아르 상사의 성별 변경을 인정하지 않았다. “불가역적 성전환을 증명하는 수술증명서가 없다”, 즉 거세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원(Cour de Cassation)의 1992년 판례에 따르면, 성별 변경을 원하는 신청자는 일정 기간 정신과 진료에서 ‘성별 도착 증세’를 보이고 ‘내외과 성전환 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낭시 지방법원은 ‘의료’라는 요건을 거세 수술 여부로 해석한 것이다. 공군은 라비제 지아르를 다시 남군으로 복무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판결에 따라 그는 2012년까지 여군으로 복무하지 못했으며, 정신과 의무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법원이 이렇게 해석한 것은 아니었다. 지방법원에 따라 수술을 하지 않고도 성전환을 인정한 판례가 있었다. 라비제 지아르 역시 2012년 항소에서 이겨 호적상 여성으로 인정받았다. 성전환 요건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라비제 지아르 사건’이 남긴 것들

라비제 지아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법의 성전환 요건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유럽 차원에서 나왔다. 2009년 유럽인권의회 위원인 토마스 함마르베리는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불임수술이나 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성전환에 대한 프랑스 법이 유럽연합(EU)법상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2016년 프랑스 국회는 민법을 개정해 성별 전환 절차를 바꿨다.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성에 해당한다고 보일 것’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 같은 주위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성으로 알려져 있을 것’ ‘요청하는 성에 알맞은 이름으로 변경되어 있을 것’이라는 조건이 기준이다. 2016년 10월12일 국회의 해당 개정안 통과에 대해 성소수자 지지단체 게이립(Gaylib)의 대표 카트린 미쇼는 〈르 피가로〉 인터뷰에서 “첫걸음이자 첫 승리”라고 말했다.

올해 50세인 델핀 라비제 지아르는 트랜스젠더협회(ANT)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2018년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5월17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성소수자들이 프랑스를 위해 일하고 국가를 위해 삶을 바치지만 아무도 그 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마음 아프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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