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2월25일 인천공항에서 한 중국인 유학생이 고글을 착용한 채 입국장을 나가고 있다.

2월24일 서울 경희대 세화원 기숙사. 방진복을 입은 관리자가 도시락과 생필품을 안으로 들였다. 입구에는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1인 1실 기준 220여 명이 수용 가능한 이 기숙사에 2월26일 오전까지 28명이 격리되었다. 당초 경희대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유학생 550여 명을 기숙사에 수용하려 했지만 상당수가 아직 입국하지 않았다. 이 대학 중국인 유학생은 지난해 기준 3839명이다. 대부분은 인근 원룸 등에서 자취한다. 경희대는 기숙사 밖 인원에 대해서는 자원봉사자를 통해 수시로 연락할 방침이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유학생 관리 문제로 대학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국내 대학에 등록된 중국인 유학생은 모두 7만1067명이다. 가장 많은 학생이 등록된 학교는 경희대(3839명)이며 성균관대(3330명), 중앙대 서울캠퍼스(3199명), 한양대(2949명), 고려대(2833명)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대부분 경희대와 비슷하게 소수의 인원을 기숙사에 2주간 격리하고, 미리 입국했거나 입소하지 않은 기숙사 밖 인원은 자율 격리한 뒤 체크하는 식이다. 급하게 기숙사를 확보하느라 한국인 학생을 내보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국내 감염이 확산되면서 중국인 유학생이 입국을 미루거나 휴학을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 유학생의 한국 입국이 방역체계를 위협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이 있다. 중국인 유학생이 없다면 한국 대학들의 재정 상태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외국인 유학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7년 12만3858명에서 2018년 14만2205명, 2019년에는 16만165명으로 늘었다(어학연수·학부·대학원 포함). 이 가운데 중국인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44.4%(7만1067명)에 달한다. 최근 베트남(3만7426명, 23.4%), 우즈베키스탄(7492명, 4.7%) 유학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유학생 중 절반 정도가 중국인이다.

교육부가 추진해온 정책의 결과다. 2015년 교육부는 당시(2014년) 8만4891명이던 외국인 유학생을 2023년까지 2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생이 2018년 57만명에서 2028년엔 40만명으로 축소된다. 올해(2020년)는 대입 정원보다 학생이 적어지는 첫해다. 2024년에는 대입 정원보다 학생이 약 12만4000명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기 없는 대학부터 점차 문을 닫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부가 대학 재정난의 한 돌파구로 열어준 것이 바로 외국인 유학생이다. 한국 학생이 줄어드는 빈자리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대구의 사립대학인 계명대의 외국인 유학생은 1722명(중국인 유학생은 878명)이다. 계명대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에만 한정지어 학생을 받을 수 없어 외국인 유학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계명대의 재학생 대비 외국인 유학생이 10%이고, 외국인 교수 비율도 10%다. 매년 중국, 베트남 현지에서 입시박람회를 열어 유학생 유치에 신경 쓰고 있다. 해외에 지은 한국어학당에서 수료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학부에) 입학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성동구 제공2월24일 서울 한양대에 중국인 유학생 유증상자 발생에 대비한 이동형 격리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정원 외’로 분류되는 외국인 유학생

지방대만이 아니다. 서울지역 사립대인 동국대의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해 4001명(중국인 유학생은 2286명)에 달한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역사교육과)는 “한국에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 늘어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의 재정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립대학의 재단들은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운영 자금을 내는 데는 인색하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하기 어려우니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방법은 학생 수를 늘려 등록금을 받는 것인데, (출산율 저하나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 등으로) 정원도 늘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을 만회하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가 외국인 유학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은 ‘정원 외’로 분류된다.” ‘정원 외’는 교육부의 정원 통제를 사실상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값 등록금’ 역시 대학들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 움직임을 격화시킨 측면이 있다. 대학들은 2009년부터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지 않으면 각종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2011년에 ‘최근 3년 동안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등록금을 올릴 수 있는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가 시행되긴 했다. ‘상한제’이지만 ‘등록금을 인상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지 못했다. 국가장학금 지원 여부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직을 맡았던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이 등록금을 10년 정도 못 올렸는데, 비용은 증가해왔다. (교직원들의) 인건비는 보통 연공급제라 임금 인상을 안 해도 오른다. 시설도 학생 요구 등에 따라 확대되고 있다. 지금 대학이 운영되는 데는 유학생들의 재정적 기여가 굉장히 크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이 단기간에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교육의 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5년 12월, 교육부는 일선 대학들의 요구에 따라 유학생의 ‘한국어 능력시험’ 기준을 낮췄다. 한국어에 서툴러도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어 실력이 매우 떨어지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 유학생이 많다. 유학생 비중이 높으면 토론을 진행하기 어려워지는 등 수업의 질에도 영향이 있다. 학과에서 유학생을 덜 받고 싶어도 대학본부에서 눈치 아닌 눈치를 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어학연수생과 학·석사 유학생에 대해 한국어 능력시험 기준을 강화하려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유학생 유치에 사활이 걸린 현장 대학들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여러 대학생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팀플(조별 과제)에서 중국인 등 외국인 유학생과 같은 조에 배정되는 것을 꺼리는 현상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희대 19학번 박기범씨는 “보통 전공수업은 유학생 전용이 있는데, 같이 듣는 수업의 경우 팀플이나 시험 때 난이도 조절이 어려워 유학생과 한국 학생, 교수님이 서로 힘든 상황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희대 16학번 양 아무개씨는 “교양 글쓰기 수업에서 유학생이 중국어로 글을 써서 번역기로 돌린 것을 프린트해왔더라. 도와주려 해도 한국어를 단어 정도만 말할 수 있으니 말이 안 통한다. 언어교육이 웬만큼 된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번 홍콩 사태 때 중국인 유학생이 홍콩 응원 대자보를 훼손했던 일 등으로 젊은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중국인 유학생과 부대끼며 반중 정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앞서의 국립대 교수는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대학 재정이 위태롭다는 사실이 의외의 계기로 폭로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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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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