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유도 선수였던 신유용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코치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피해는 장기화되었다. 국가대표까지 선발되었던 유망주는 유도를 그만두었다. 내가 신씨 사건을 맡게 된 건 2019년 1월이었다. 검찰의 피해자 조사에 동석하기 위해 새벽에 기차와 택시를 타고 전북 군산에 갔다가 오밤중이나 이튿날 서울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며 지난해 이맘때를 보냈다. 더없이 고통스러웠을 그 시간에도 신씨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익 차원에서 사건을 맡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매일을 열심히 사는 신씨에 대한 애정이 커져만 갔다.

신씨는 비교적 담담하게 지난한 조사에 응했다. 그런 신씨도 끝내 눈물을 터트릴 때가 있었다. ‘왜 피해 당시 바로 외부에 알리지 못했느냐’라는 내용의 질문에 대답할 때였다. 신씨 어머니는 혼자 아이 넷을 키우며 쉬는 날 없이 세차장에서 일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했고, 가난한 엄마의 일상에 유일한 빛은 자식들이었다. 신씨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로 인정받은 건 엄마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절망을 더 어렵게 여긴 열여섯 살의 딸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당한 열여섯 살 딸은 자신보다 어머니가 느낄 절망을 더 어렵게 여겼다. 그의 어머니는 변호사인 나와 동갑이었다. 신씨는 엄마가 고생한 탓인지 나보다 많이 늙어 보인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 속에는 가정형편과 어머니의 노고, 그를 잘 알고 있는 딸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신씨는 밝았다. 타고난 품성이 그러했고 그런 일들 속에서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던 어느 날 신씨는 참고자료로 고등학교 시절 썼던 다이어리를 가져왔다. 10대 여고생다운 일상과 감성이 가득했다. 당시 교제하던 또래 남자친구 이름을 적고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 넣은 다이어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뜨거워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한 기억도 난다. 그렇게 이제는 스물넷이 된 신씨가 지나온 10대 시절을 시간여행자처럼 헤집고 돌아다닌 끝에 항소심 마지막 재판이 열렸다.

지난해 12월 재판정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신씨는 예쁜 새 다이어리를 샀다며 꺼내 보여주었다. 새해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신씨는 과거를 헤매던 많은 날 끝에 다음 한 해를 기대하며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재판에서 피해자의 뜻에 따라 합의 의사가 없음을 전달했다. 가해자 측은 1심에서 6년5개월 중형이 선고된 후 적지 않은 합의금을 제시했지만, 신씨는 이를 원치 않았다. 사건이 기소되고 유죄가 인정되기까지 많은 이들이 보내온 응원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신씨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가해자가 형을 다 살고 나오면 저를 죽이려고 찾아올 수도 있겠죠?”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사건이 잘 풀려가고 있어서 또 신씨가 늘 웃고 있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피해자에게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먹먹했다. 피해가 소명돼도 오롯이 기뻐하기 어려운 현실이 속상했다.

항소심에서는 1심 형량이 유지되었다. 가해자는 더 이상 신씨와 자신이 연인이었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항소심이 끝나면서 부랴부랴 기차에 오르던 일도 과거가 되었다. 신씨가 새로 산 예쁜 다이어리에 어울리는 좋은 일이 많은 2020년이 되길. 더불어 신씨의 걱정이 그의 다이어리가 아니라 법원과 수사기관, 정부의 일지에 빼곡히 기록되고 헤아려지기를 바라본다.

기자명 이은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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