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그룹 ‘(여자)아이들’의 메인 댄서 수진은 세상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장소가 어디든 관객이 누구든 한결같이 당당한 눈빛과 거침없는 몸짓은 그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스테이지로 변하는 마법을 부린다.

반면 무대 아래의 수진은 다르다. 2018년 데뷔와 동시에 그해 신인상을 모조리 휩쓸어버린 저력답게, (여자)아이들 여섯 멤버는 각자의 개성으로 반짝인다. 걸출한 프로듀서이자 리더인 소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에너지 덩어리 속에서 수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거나 가끔 작게 웃음을 지을 뿐이다. 두 눈을 의심하며 다시 무대 위로 시선을 옮겨본다. 조금 전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불타오르는 한 마리 흑조만 남았다.

수진은 무대 위와 아래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속칭 ‘갭(Gap)이 있는’ 아이돌이다. 쉽게 말해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무대 아래서는 웃음 많고 일견 조심스러운, 드물지 않은 유형의 20대 여성에 가깝지만 무대 위에 서는 순간 돌변한다. ‘눈빛’으로 대표되는 수진의 무대는 마치 메두사의 눈처럼 보는 사람을 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뛰어난 퍼포먼스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상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지난해 엠넷(Mnet)에서 방영된 걸그룹 컴백 서바이벌 〈퀸덤〉의 ‘싫다고 말해’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세븐 링스(7 rings)’ 커버일 것이다. (여자)아이들 미니 2집 〈아이 메이드(I Made)〉에 수록된 발라드 곡 ‘싫다고 말해’의 경우 경연 무대를 위해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편곡되었다. 그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붉은 립스틱을 거칠게 지우며 이별 직후 상처받은 자아를 표현한 수진의 표정 연기였다. 이 장면은 프로그램 예고를 통해 몇 번이나 반복되며 본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춤 좀 춘다는 아이돌 사이에서 필수 교양이 되었던 ‘세븐 링스’ 커버는 춤추는 수진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영상이다.

수진의 춤이 가진 스타성은 노래와 결합될 때 더욱 큰 폭발력을 보인다. 지난 연말을 뜨겁게 달군 (여자)아이들의 ‘라이언(LION)’에서 수진은 곡의 메시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엔딩 파트를 담당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I’m a lion/ I’m a Queen 아무도/ 그래 길들일 수 없어 사랑도”를 나지막이 속삭이는 그의 얼굴은 피의 전쟁 끝에 권력을 거머쥔 사자왕 그 자체였다. 재능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던 데뷔곡 ‘라타타(LATATA)’의 결정적 순간 “누가 뭐 겁나?” 역시 수진의 몫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누구든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무엇도 겁내지 않는 타고난 무희. 수진이 춤을 춘다. 무대를 장악한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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