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전두환 두 군사정권 시절 언로는 막혀 있었다. 바른말 하는 기자는 고문과 구속 끝에 현장에서 쫓겨났다. 마침내 1985년 6월, 군사정권 아래서 해직된 기자들이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를 꾸리고 ‘말다운 말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말〉지는 그렇게 창간됐다. 1986년 〈말〉지 기자들은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이 일로 3명이 감옥에 갔다.

나는 선배들이 투쟁으로 열어놓은 공간을 비집고 1989년 〈말〉지에 입사해 1992년까지 현장을 누볐다. 이렇다 할 독립 언론 매체가 드물던 그 무렵 〈말〉지는 민주화운동 진영의 귀중한 공론장이었다. 기자들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진보적인 논객이 〈말〉지를 무대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심층 토론하고 기고했다. 남북 분단, 주한 미군, 유엔사, 북·미 관계, 재벌 문제, 언론 장악, 검찰 비리, 여성 차별, 노동문제 등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주제다.

잊고 있었던 30년 전 〈말〉지 기획기사가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말〉지 기자 출신인 최진섭 ‘독립무크 말+’ 대표가 엮은 〈오래된 비판 그 후 30년〉이다. 김중배, 백기완, 최열, 서재정, 강준만, 김민웅 등 낯익은 필자뿐만 아니라 안영배, 오연호, 신준영, 이재화, 천호영, 이재영 등 〈말〉지 기자들의 탐사보도가 함께 어우러졌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한국 사회의 방향을 놓고 고민했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말〉지 기획기사 34선을 다시 들춰 보며 ‘하늘 아래 새로운 뉴스는 없다’고 배운 초년 기자 시절의 경구를 새삼 실감했다. 30년 전 ‘머지않은 장래에 해결되리라’고 꿈꿨던 민족 자주, 양성 평등, 민주주의, 경제 민주화 등의 여러 문제는 여전히 해묵은 과제다. 현재도 한국 사회의 주된 쟁점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결국 미래 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라 할 수 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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