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2월12일 4·15 총선 서울 종로 예비후보 등록을 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정말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애국시민 여러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2월7일 기자회견을 이렇게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언론에 미리 배포한 회견문 서두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이었다. 최근 몇 개월간 황 대표는 ‘애국시민’이란 말을 반정부 집회 참가자들에게 자주 쓴다. 복선이었을까? 출마 선언 뒤 일주일간 황 대표는 기존 지지층에게 ‘색깔’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정치 1번지’라는 오랜 수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번 종로 선거는 중요하다. 차기 대선 주자 수위권으로 꼽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민주당 후보로 종로에 출마한다. 이곳은 정세균 국무총리의 19·20대 총선 지역구이다. 자유한국당에게는 험지이지만, 달리 보면 ‘정권 심판론’의 화력을 집중할 만한 요충지기도 하다. 당내 다른 후보들의 공천 판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황교안 대표가 종로에 가서 솔선수범해야 다른 인사들도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도록 요청할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하고도 한 달 이상 결정을 미뤄왔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종로 출마 아니면 불출마”라고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야 황 대표는 종로 출마를 발표했다.

2월9일 황 대표의 첫 종로 행보에는 기자 20여 명이 따라붙었다. 비슷한 수의 유튜버가 간이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꽂고 현장을 생중계했다. 황 대표는 첫 일정으로 종로 젊음의거리 일대를 돌았다. ‘공실(空室) 상가’를 확인하는 일정이었다. ‘임대’라고 적힌 빈 점포나 폐업한 식당 앞에서 멈춰 사진을 찍었다. 황 대표는 “내가 (삼청동) 총리공관에 있을 때만 해도 공실이 거의 없었다. 몇 년 사이 공실이 엄청나게 는 원인은 뭘까? 이 정부의 경제 실정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황교안 대표 양옆은 젊은 당직자들이 지켰다. 부드럽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려는 듯했다. 모교인 성균관대 앞 한 분식집으로 이동한 황 대표는 떡볶이와 어묵을 먹으며 대학 시절 추억과 색소폰을 연습하던 일화 따위를 이야기했다. 사고는 무심결에 터졌다. 기자들 앞에서 어묵을 먹던 황교안 대표는 문득 옆에 있는 당직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학교를 다닐 때, 1980년. 그때 뭐 무슨 사태가 있었죠? 1980년. 그래서 학교가 휴교되고 뭐 이랬던 기억도 나고 그러네요.” 해프닝을 묘사하듯 가벼운 어조였다.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사태’라고 불렀다는 비판이 나왔다. 2월11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피해자 및 유가족, 광주시민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놓은 반역사적·반인륜적 행태”라고 말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설훈 의원은 “5·18 망언을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가 왜곡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저열한 역사 인식과 망언을 용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보도자료에서 “1980년 5월17일 휴교령에 따라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되었던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계없는 발언이다. (…)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는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황교안 대표가 2월11일 이화장을 찾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인 이인수 박사(왼쪽)를 만났다.

진보적인 NCCK 방문해 ‘태극기 광장’ 옹호

자신의 발언으로 여야가 공방을 주고받던 2월11일 황교안 대표가 향한 곳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이었다. 황 대표는 이곳에서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 내외 등을 만났다. 이들은 이승만 동상 앞에서 함께 묵념한 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동상에 적힌 구호를 가리키며 황 대표는 “작년 11월 내가 ‘자유 우파가 뭉쳐야 한다’는 어젠다를 던졌다. 마침 이 문구가 있는데, 정말 귀한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와 이인수씨의 면담은 화기애애했다. 황 대표는 “(광복 후) 좌우 대립 얼마나 심했나? 그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바른 결정을 해주셔서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인수씨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황 대표님을 결사 지지한다”라고 화답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태극기 부대’가 아이콘으로 삼는 인물이다. 반정부 집회를 주도해온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은 지난해 “광화문광장을 ‘이승만 광장’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 앞에 선 황 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세우신 분”이라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모진 고초를 넘어 국민들과 함께 세우신, 자유대한민국, 뜻 받들어 굳게 지켜내겠습니다”라고 썼다.

이튿날 황교안 대표가 찾은 곳은 개신교 단체였다. 한기총이 아니라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갔다. 두 단체는 신학적·정치적 성향이 다르지만, ‘한기총이 개신교계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 한다. 전광훈 한기총 회장을 가까이해온 황 대표가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관심사였다. 김태영 한교총 대표회장은 “황 대표님은 항상 인상이 반듯한 분으로 기억이 있다. (교인들이) 광장으로 안 나오도록 반듯한 정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2월5일 한교총을 찾은 이낙연 전 총리에게도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황교안 대표는 정부를 비판하고 ‘국민’의 의지를 강조했다. “(정부가) 무도하게, 법에 안 맞는 불법적 조치를 하니 정상적 대화가 안 되고, 싸움이 안 되니까 결국 광장까지 가게 된다. 자유한국당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기독교 성도들도 엄청나게 많이 모여 정부 잘못을 질타하는 모습이 많이 안타깝다.” 황 대표는 “나라가 어려울 때 교계에서 구국기도회라도 해야 될 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교총 관계자들은 “기자들이 많다”라며 공개 발언을 꺼리는 모양새였다. 면담은 곧 비공개로 전환됐다.

진보적 단체인 NCCK에서도 광화문 집회가 주된 논제였다. 이홍정 NCCK 총무는 “광장이 극단의 언어로 분열되고 종교인들이 한 축을 차지한다. 황 대표님 고민이 클 것이라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도 황 대표는 ‘광장’을 감싸는 듯한 답을 내놓았다. “광화문에 많은 분들 모이시는데 그것은 국민의 뜻을 상징한다.” 이 총무가 ‘냉전 의식 재생산’ ‘특정 개신교 세력의 정치집단화’ 등을 비판하자 황 대표는 “교계에서 많이 도와달라”는 취지의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비공개 면담은 하지 않았다.

보수 유튜버들은 그를 열성적으로 따라다녔다. 대부분 중장년인 유튜버들은, 황 대표가 차로 이동하는 거리를 전력 질주로 따라잡기도 했다. 숨을 몰아쉬며 우르르 승강기에 탄 이들 가운데서 “유튜브하려면 뜀박질도 잘해야 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보수 유튜브 시청자들은 황교안 대표의 행보가 마음에 드는 듯했다. 쏟아지는 지지 댓글 사이에서, 간혹 “누가 빨갱이인지, 아닌지” “누가 하나님이 보낸 분인지, 아닌지” 따위 논쟁이 벌어졌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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