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제목이 미군의 지상군 파병을 독려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분석되는 1999년 4월12일자 〈타임〉 표지.

사진이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대중이 믿는 이유는 사진만이 가지고 있는 지표적(index) 속성 때문이다. 지표적 속성은 사진이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증명하는 지시체의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사진이 존재했던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촬영해도 함께 사용되는 글이나 맥락에 따라 내러티브를 갖게 된다. 사진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의도하는 대로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는 피비린내가 가실 줄 몰랐다. 당시 미디어는 세르비아 군이 보스니아와 코소보 이슬람과 크로아티아, 슬로바니아 등에서 자행한 대량학살, 강간, 고문 등 인종 청소를 보도했다. 서구 미디어 대부분은 고문과 억압 행위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포토저널리스트들은 난민과 난민촌 사진으로 당시 위기 상황을 시각화했다.

1999년 4월12일자 〈타임〉 표지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공허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이 사진에서 여성이 두르고 있는 하얀색 머리 스카프는 독자의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끌고, 그녀가 입고 있는 두꺼운 코트와 언뜻 보이는 눈의 흔적은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기에 너무도 고통스러운 그날의 기상 조건을 가시화한다. 밝은 피부색과 현대적 서구 의상을 입고 있는 이 젊은 여성은 한쪽 가슴이 반쯤 드러난 채로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배경을 통해 독자들은 이 사진이 난민 수용소에서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성 본능과 전쟁 속의 유약함을 표상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이 사진은 절망적인 인간의 존재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한다.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독자를 엄마와 아기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웬디 코졸은 “이 사진은 전쟁에 대한 관점을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고통받고 있는 이상화된 백인 어머니상으로 축소시킨다”라고 주장한다.

한 장의 사진이 군사개입 정당화?

사진과 함께 실린 〈타임〉 표지의 문구는 ‘지상군 파병이 해답인가?’이다. 이는 결국 이 ‘백인(미디어에 의해 동질감이 강조된)’과 갓난아기, 그리고 다른 죄 없는 피해자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명분을 지지하는 정치적 내러티브를 구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정박기능(anchorage)이다. 사진 이미지에 함께 쓰이는 제목이나 설명이 사진 의미를 고정시키는 구실을 한다. 사진이 다른 의미로 읽힐 여지를 없애기 위해 문구나 사진 설명을 통해서 사진의 의미를 고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개별 이미지의 진실성 혹은 조작의 정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진적 재현이 어떤 식으로 성이나 성별, 인종에 관한 이상을 만들어내고,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하는지에 있다.

사실을 기록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었는지가 때로는 더 중요한 문제다. 사진은 진실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해도 사진이 사용되는 맥락과 함께 쓰이는 언어적 장치에 의해 전달자가 의도한 의미를 확고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이미지가 우리의 사고 틀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미지와 언어의 상호작용, 사용된 맥락에서 비롯된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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