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2015 메르스 백서〉에 따르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은 유전학적 기술이나 첨단 의약품으로 통제된 것이 아니라 역학조사와 격리, 검역과 같은 전통적 방역 조치에 의해 ‘겨우’ 종식될 수 있었다. 당시 메르스 사태가 고발한 건 다름 아닌 위태로운 의료공공성과 보건 당국의 무능이었다.

5년 후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는 보건의료 시스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유행에서 보건 당국은 메르스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뒤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있다.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한 필수 자원인 감염내과가 받는 푸대접은 그대로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은 첫 삽도 뜨지 못했고, 감염관리와 관련된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은 매번 발목 잡혔다. 한국 사회는 신종 감염병 유행이라는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남은 잔불을 살피지 않았다. 전문가를 통해 5년 전과 현재 보건의료 시스템을 비교해보았다. 문제가 명확한 만큼 현장 전문가와 정책 전문가가 내린 진단과 해결책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물론 한국 사회가 메르스에서 배운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보건 당국과 전문가 학회는 유례없이 빠르게 진단키트를 만들어 일선 병원에 보급했다. 6시간 만에 감염 여부를 판독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키트가 보급되며 일시적으로는 환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진자 판정이 빨라지면 그만큼 지역사회 전파도 신속하게 막을 수 있다.

2월6일 기준으로 신종코로나 확진자는 23명으로 두 명(1·2번 환자)이 완치되었다.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게 더 많지만 의학계는 신종코로나의 치사율과 중증도는 다른 감염병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전염성이 높아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높다고 한다.

2월6일 확진 환자 중 두 번째로 퇴원한 1번 환자는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 국적의 35세 여성이었다. 그는 18일간 인천의료원에서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며 손편지 하나를 남겼다. “우리가 이 질병을 극복하는 날이 오면 의료진들을 내 고향 집에 초대하고 싶다.” 1번 환자를 담당한 인천의료원 조승연 원장은 “감염병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공조와 서로 간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한 분야가 됐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길 역시 그 대답에서 멀지 않아 보인다.

 

 

ⓒ시사IN 이명익김홍빈 교수는 “정부의 의지 없이는 감염을 전공하려는 의사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학교 병원 로비는 한산했다. 김홍빈 감염내과 교수는 격리병동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동료들을 떠올렸다. “온몸으로 막고 있는 그들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괜히 병원 못 가게 됐다’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확진 환자가 입원한 뒤로 분당서울대병원 외래 환자는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감염내과는 감염병이 유행할 때에야 겨우 주목받는다. 신종 감염병에 취약한 공중보건의 한계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김홍빈 교수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민관 종합대응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즉각대응팀을 꾸려 환자를 돌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신종코로나가 유행하며 다시 방역 최전선에 섰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마스크를 귀에 걸쳐줄 수 있는지 묻자, 감염내과 의사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스크는 그렇게 대충 쓰면 안 됩니다.”

의사 국가고시 합격자가 매년 3000명 이상 나오는 한국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는 ‘한 줌’이다.

메르스 때도 190여 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270여 명이다. 이조차도 소위 ‘빅5 병원(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세브란스·서울대병원)’을 제외하면 각 병원에 많아야 1~2명밖에 없다. 생소해서 ‘간염’내과로 아시는 분들도 많다(웃음). 감염내과는 외부 미생물이 몸에 들어와 일으키는 감염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사람 면역기능도 알아야지, 몸에 들어오는 수많은 미생물도 알아야지, 각각의 미생물을 치료하기 위한 약도 따로 알아야지…. 어느 한 가지로만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학문이다. 타과와 협의 진료가 많고 타과에서 컨설팅(자문 요청)도 자주 들어온다. 직접 시술을 하거나 수술을 한다기보다 환자가 고열에 시달리는 이유가 뭔지, 어떤 약을 줘야 할지 등을 궁리하고 연구해서 진단하거나 조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 개원할 때 감염내과 전문의는 나 혼자였는데, 인원이 충원될 때까지(현재 3명) 한동안 365일 출근했다.

2015년 메르스는 감염병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신종코로나도 마찬가지다. 메르스 이후 신종 감염병 대응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길이 멀어도 바퀴가 조금씩 앞으로 굴러가면 좋겠는데(웃음). 오히려 퇴보한 부분도 있다. 메르스 사태가 끝난 뒤 주로 의사 출신 공무원들이 징계를 많이 받았다. 중간 허리가 다 끊겨버렸다. 그 빈자리를 채운 공무원들은 부서를 자주 이동하니까 전문성도 쌓이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한 전문가 몇몇에 의존해 상황을 끌어나가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처럼 자체적으로 역량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 아니다 보니 사태가 날 때마다 각 병원에 있는 감염내과 의사들의 도움을 요청한다. 우리 사이에서는 ‘내 자신도 못 지키고 내 병원도 못 지키고 있는데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정부가 문제 해결 능력을 외주 주고 있다?

자체 능력을 키우지 않고도 어찌어찌 사태가 해결되니까 정부가 능력 키울 생각을 계속 안 한다. 만약 국가정보원이 무능해서 사설탐정에게 정보 수집을 부탁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비슷한 모양새다. 국가로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곪아야 터지니 그냥 놔두자’ 할 수도 없는 게 당장 환자가 죽어가니까…. 가서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애증의 관계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국가가 부딪친 위기는 국가기관이 키운 전문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부가 전문가들에게 역학조사관부터 시작하면 차근차근 성장해 과장, 센터장, 본부장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야 질본이 전문가로 채워질 수 있다. 당장 역학조사관 조건부터 너무 열악하다. 말이 좋아 ‘전문임기제 공무원’인데, 어느 의사가 2년짜리 계약직을 위해 미래를 걸겠나. 내가 1999년 질본 전신인 국립보건원에서 공중보건의를 할 때 역학조사관 제도를 시범 시행했다. 당시에 공무원을 할까 고민하다 결국 포기했다. 몇몇 개인의 사명감에 기대는 ‘열정페이’로 구축된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 없이 선언적인 말만 듣고서는 감염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늘지도 않을 거다.

메르스 이후 나아진 점이 있다면?

국가지정 치료병상을 갖췄고, 보호구를 착용하고 환자 보는 것도 자리 잡았다. 질본이 언론에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이전에 비하면 분명히 나아졌다. 그런데 이 바닥에 깔려 있는 시스템이나 구조나 인력이나 이런 부분은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현재는 사실상 질본 본부장의 능력에 기대서 돌아간다. 시스템은 그 자리에 누가 오건, 그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신종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이전처럼 백서를 만든다 해도 내용 면에서는 크게 달라질 거 같지 않다.

ⓒ시사IN 이명익2월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격리 치료를 하고 있는 분당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체온 감시 장비가 내원객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2016년 9월부터 ‘감염·예방 관리료’가 병원에 지원되고 있다.

입원 환자 한 명당 일정 금액을 산정해서 감염관리 비용으로 쓰라고 주는 건데,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감염내과가 예방 성격이 강하다 보니 유지할수록 적자인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감염내과 의료수가(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등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받는 비용)가 낮다. 애초에 감염내과는 환자 자체도 적을뿐더러, 환자가 있더라도 직접 시술이나 수술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 업무 중 하나인 항생제 조언이나 기본수칙 준수 독려 등에는 수가조차 매겨져 있지 않다. 돌아오는 보상이 없으니 병원에서도 투자하지 않으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무엇보다 협업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병원만 관리를 잘하면 뭐하나. 모든 병원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가야 한다. 결국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정부는 감염관리를 병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병원 처지에서 감염내과는 돈을 벌어다주는 ‘수익’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돈을 가져다 쓰는 ‘천덕꾸러기’다. 그렇다 보니 어떤 병원에서는 감염내과 전문의에게 건강검진도 시키고 일반 내과 환자도 보게 한다. 의사 처지에서는 전문성도 못 살리고 미래도 잘 안 보이는 거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미국 듀크 대학에서 운영하는 DICON(Duke Infection Control Outreach Network)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몇 차례 정부에 제안하고 건의도 했는데 소식이 없다.

DICON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감염내과 전문의를 풀타임으로 고용할 수 없는 중소병원들이 모여서 월급을 나눠 내는 일종의 ‘셰어 닥터’ 프로그램이다. 우리 병원에 적용해본다면 감염내과 의사 10명, 감염관리실 직원 10명을 뽑고 근처의 중소병원 5~6곳과 계약을 맺는 거다. 소속은 대학병원이지만 월급은 각 병원이 20%씩 내고 대신 일주일에 몇 번 그 병원에 가서 자문해주는 식이다. 대학병원의 수많은 경험을 중소병원에 전수하고, 중소병원은 인건비를 다 낼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만 얻어갈 수 있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다.

감염병 전문병원도 몇 년째 표류하고 있다.

5년 동안 진행된 게 없다. 어디에 지을지도 결정 못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짓는다고 했다가 소음 기준, 부지 규모 때문에 안 된다고 하니까 보건복지부도 서울시도 국립중앙의료원도 서로 미루면서 여기까지 온 거다. 이게 지자체별로 나눠서 전문병원 건물 몇 개 짓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만 봐도 감염내과만 부족한 게 아니라 중증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인력은 없는데 자리만 덩그러니 만들어놓은 경우가 많다. 지역별로 다 있을 필요도 없고, 권역별로 몇 개 있으면서 중앙에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로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이 있어야 한다. 진료만이 아니라 평시에 교육과 연구와 훈련이 동시에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신종 감염병 위기는 앞으로도 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카센터에 차를 정기검진 맡겼다고 생각해보자. 카센터 사장이 ‘이상 없네요. 검사비는 10만원입니다’라고 하면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할 수 있는가? 보건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당장 혜택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예방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사실 남 탓을 할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수준에 맞는 공중보건 체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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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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