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프랑스에서는 연금개혁으로 인한 정부와 국민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위는 지난해 12월5일 파리에서 열린 연금개혁 반대 시위.

프랑스에서는 연금개혁으로 인한 정부와 국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5일 시작된 파업이 7주 이상 이어져 최장 파업 기록을 경신했다. 시위 첫날 참가자 수는 80만6000명에 달했다.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의 기차·지하철·버스 운행이 정지되고 학교 운영이 중단됐다. 시위 첫 주 교통수단의 운행률은 15~20%에 불과했다.

이번 파업은 예고된 충돌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제도를 손보려 한다. 주요 노동조합은 이에 반발해 일찌감치 대규모 파업을 천명했다. 지난해 11월21일 연금자문위원회(COR)에 따르면, 2025년 프랑스의 연금재정 적자는 최대 172억 유로(약 22조원)에 이른다. ‘예산 균형을 맞춘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일군의 프랑스 경제학자들은 〈르몽드〉에 정부 개혁안이 “이해 가능성, 안전성, 신뢰, 평등이 불투명하다”라고 성명을 냈다. 지난 1월7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당의 우고 베르나리시스 의원은 “(정부가) 대화가 없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지난해 12월11일 경제사회환경이사회에서 노조와의 협상을 목표로 구체적 개혁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연금개혁위원회가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시사IN〉 제633호 ‘마크롱의 연금개혁, 최선인가 위선인가’ 기사 참조). 이번 개혁안은 이 보고서 원안과 차이를 두었다.

먼저 ‘포인트제’를 손봤다. 포인트제란 연금 수령액을 전체 근로기간에 얻은 포인트로 산정하는 제도다. 원안에서는 1963년 이후 출생자에게 2022년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필리프 총리의 수정안에서는 2004년 이후 출생자만 2022년부터 포인트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1975년생부터 2003년생은 2025년까지 기존 방식을, 이후는 포인트제를 따른다. 또한 특별연금제를 적용해온 직군은 포인트제 적용 시기를 10년 더 늦췄다.

‘균형연령’ 제도도 수정했다. 균형연령이란 일종의 기준이 되는 나이인데, 64세를 기준으로 은퇴한 해에 따라 연금 감액과 증액을 적용한다. 개혁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프랑스 최대 노조인 민주노동총동맹(CFDT)도 반대 의사를 강하게 내비친 제도이다. 수정안은 2025년부터 64세를 기준으로 삼겠다던 기존 원안과 달리, 2022년 현 연금 수령 연령인 62.4세를 해마다 0.4세씩 올려 2027년에 64세로 설정했다. 또한 포인트의 가치는 “물가 상승이 아닌 평균급여에 따를 것”이며 노사가 그 가치를 논의하고 5년 동안은 고정하는 안을 냈다.

시기를 유보하고 불명확한 가치 책정 방식을 정했으나 여전히 반응은 좋지 않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노조 대표 필리프 마르티네스는 “정부가 국민을 우롱했다”라고 말했다. 기준연령 설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정부에 화가 난 온건파 노조 CFDT도 시위에 가담했다. 지난해 12월17일 프랑스 전역에서 시민 61만5000명이 연금개혁 반대를 외쳤다.

컨설팅 회사 오독사-덴츠가 지난해 12월11~12일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7%는 ‘정부가 핵심적인 수정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답했다. 12월18~19일 필리프 총리와 노조의 논의는 협상 결렬로 끝났다. 새해를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이 ‘대통령 특별연금 포기’ ‘각 직종의 근무 강도 고려’를 거론했으나, 대규모 파업은 해를 넘겨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당초 특별연금제를 폐지해 통합할 경우 약 80억 유로(약 10조원)의 재정을 긴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프랑스 앵포’ 분석에 따르면 각 직군의 상여금 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30억 유로의 재정 긴축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파업 장기화의 근본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연금제를 적용하는 각 직군의 특수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여당 일부 의원 “균형연령은 불공정”

먼저, 이번 파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국영 철도기업인 SNCF와 파리 지하철 RATP의 경우 현재 운전사는 52세, 다른 철도원은 57세에 은퇴할 수 있다. 지하 공기오염, 불규칙한 근무시간, 야간근무, 주말·공휴일 근무 등 근무 강도를 감안해 설정한 나이다. 연금 수령액 측정 방식은 퇴직 전 6개월 기준에서 총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하는 포인트제로 바뀌어 수령액 20~30%가 삭감된다. 지난해 12월11일 필리프 총리는 철도노조의 반발에 포인트제를 1985년생 이후의 직원에게 적용하는 안을 발표했으나 철도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프랑스 변호사위원회도 반발이 거세다. 이 단체 대표 크리스티안 페랄슐은 1월13일 라디오 ‘프랑스 앵포’에서 “자유직은 직장인 혹은 공무원과 다르다. (연금제를 통합하는) 체제는 불평등하다”라고 말했다. 페랄슐 대표에 따르면 “자유직 절반의 납입금이 기존 14%에서 28.2%로 두 배 오른다.”

특별연금제를 운용하지 않는 직군인 교사들의 개혁 반대 역시 꾸준히 이어졌다. 프랑스 교사는 급여가 적다. 지난해 12월9일 일간지 〈라크루아〉에 따르면, 프랑스 교사는 OECD 국가들의 교사 급여 평균에 비해 초년생은 9%, 10~15년 경력자는 20% 낮은 급여를 받는다. 퇴직 전 6개월 기준이었던 수령액 측정 방식이 총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하는 포인트제로 바뀔 때, 교사들은 연금도 삭감된다. 개혁안 원안을 내놓았던 연금개혁위원회의 들르부아예 위원장 역시 교사들의 손해를 인정했다. 정부는 급여를 올려 교사들을 달래려 한다. 지난해 12월20일 한 인터뷰에서 장미셸 블랑케 프랑스 교육장관은 “오늘날 프랑스에서 어떤 직종도 겪지 않았던 월급 인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12월31일 〈라리베라시옹〉에 “‘균형연령’은 사회적으로 불공정하다”라고 성명을 냈다. 정부가 디테일을 수정할 게 아니라, ‘균형연령 설정’이라는 개혁안 골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론에 바탕을 둔 비판이다. 지난 1월6일 BFMTV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53%가 파업을 지지하며, 66%가 ‘균형연령 설정’에 반대했다. 결국 1월11일 필리프 총리는 부분적으로 균형연령 설정을 유보했다. 1월20일에는 47일 만에 교통수단 운행이 정상화됐다.

하지만 연금개혁을 둘러싼 대규모 파업은 끝나지 않았다. 정부가 국무회의에 상정한 법안에는 “2037년부터는 ‘균형연령’을 64세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결국 1월24일 파업은 다시 이어졌다. 마크롱 정부는 노조와의 재정회의를 통해 이를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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