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씻기보다 중요한 것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647
  • 승인 2020.02.03 12: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위스 치즈에는 구멍이 많다. 잘 보면 구멍이 불규칙하다. 여러 개 치즈를 실로 한 번에 꿰려면 구멍 위치가 정확히 맞아야 한다. 재난 사고 원인을 설명할 때 ‘스위스 치즈 모델’이 자주 언급된다. 영국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이 만든 이론이다. 어느 한 단계 실수(구멍)로만 재난이 발생하지 않고 여러 분야가 중첩된 결과라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최전방에 있었던 의료인들의 증언을 담은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2016)에도 이 모델이 언급된다. 최원석 교수(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는 말한다. “치즈 한 겹이라도 구멍 위치가 맞지 않으면 실로 한 번에 꿸 수 없어요.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에 뚫린 구멍이 너무 많아서 구멍을 맞출 필요도 없이 터진 것이었을 수도 있어요.” 최 교수 지적대로 메르스 사태는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며 컨트롤타워 구실을 방기한 정부,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지만 최하 수준이었던 보건체계,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까지 그 실상이 드러났다. 다행스럽게도 메르스를 겪으며 전 사회적으로 ‘경험치’를 쌓았다. 정부 대응체계도 돌아보았고, 민간병원 대응체계도 잡혔다. 시민들도 의료 쇼핑을 자성했고, 가족 단위 무분별한 면회 문화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연합뉴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분야도 있다. 언론이다. 〈헤럴드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계기로 대림동 르포를 했다. ‘르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 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1년 전 〈시사IN〉은 ‘대림동 한 달 살기’ 기획을 했다. 통계로는 포착되지 않은, 우리 안의 이웃 재한 조선족의 삶을 심층적으로 담아냈다. 이들에게 던져지는 혐오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앞으로도 이 기사가 소환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메르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전염병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병원 중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5.8%, 자료를 제출한 OECD 26개국 평균은 52.6%이다. 한국은 최하위다. 공공재는 적자나 흑자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지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김명희 상임연구원의 지적처럼 감염병 유행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14~17쪽 기사 참조). 이번을 넘겨도 앞으로 새롭고 더 심각한 감염병이 출현할 수 있다. 공공병원은 적어도 한 구멍 정도는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다. 문제는 그 안전장치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원의 분배는 정치가 결정한다. 그 정치를 바꿔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 있다. 지금 손 씻기만큼이나 4월15일 내 손으로 하는 정치도 중요하다.


〈시사IN〉은 속보보다 심층보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코로나19 사태 원인과 대책, 그리고 그 후 대처를 깊이있게 보도하겠습니다. 

〈시사IN〉코로나19 특별 페이지 https://covid19.sisain.co.kr/
〈시사IN〉구독하기 https://subscribe.sisain.co.kr/
〈시사IN〉후원하기 https://support.sisain.co.kr/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