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한국 대학에는 노동조합이 여러 개 있다. 교수 노조, 교직원 노조(대학노조), 비정규교수 노조, 시간강사 노조, 대학원생 노조, 비학생조교 노조, 청소·시설·경비노동자 노조 등이다. 이 노조들은 사안에 따라 서로 연대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소속 조합원의 임금협상이나 노동환경 개선 같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활동한다. 같은 현장에서 일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 발전’ 같은 거시적 문제에 대해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가 극히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필자는 전국대학원생노조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타이완에는 교수·강사·대학원생이 연대 가능한 조직 틀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교수·강사·학생 사이의 위계가 뚜렷한 한국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였기에 흥미로웠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말, 개인적으로 타이완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타이완 고등교육산업노조 사무국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인터뷰한 내용을 이 지면에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타이완 고등교육산업노조가 시사하는 것

최근 10년 동안 타이완의 고등교육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학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연구비 수주) 5년에 500억!” 같은 구호가 난무하는 타이완 고등교육의 상황은 한국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교수들이 경쟁적으로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고, 이 사업에 대학원생들이 대량으로 고용된다. 교수·대학원생의 관계가 사실상 고용자·피고용자의 관계로 변화되는 경우다. 대학원생의 임금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노동의 불안정성 또한 심각했다. 타이완에는 전국 100여 개 대학에 10만명 정도의 대학원생 조교가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나마도 대학 측에 의해 문제 제기 자체를 묵살당하고 고립되어 있었다. 대학원생 조교들은 노동보험·퇴직금·최저임금 등을 보장받지 못해도 항의할 경로 자체가 없었다. 부당해고도 빈번했다.

교원의 노조 설립 자체는 2012년부터 법적으로 허용된 상태였다. 그 결과로 ‘타이완 고등교육산업노조’가 결성되었다. 산별노조다. 대학 내에 교수와 강사 이외에도 다양한 피고용자가 존재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국립 타이완대 대학원생들도 노조를 결성했다. 당초 대학 측은 대학원생의 노동자성 자체를 부정했다. 그러나 타이완 노동위원회(한국의 고용노동부에 해당)가 그 노동자성을 인정하자, 논쟁은 ‘학생 조교가 노동자인가?’라는 좀 더 구체적인 주제로 옮아갔다. 타이완대 대학원생 노조는 고등교육산업노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조직은 연대해서 2개월마다 전국적으로 대학원생들의 제보를 받아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식으로 대학 측에 맞섰다. 결국 타이완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하여, 노동위원회와 교육부가 조정안을 내놓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학생 조교를 ‘노동자형’과 ‘학습형’으로 분리하는 조정안이 나왔다. ‘노동자형’만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데, 조교의 대부분인 이공계 연구조교들은 ‘학습형’으로 분류되었다. 학생들에게 최악인 이 조정안을 둘러싼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완 고등교육산업노조 사례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고등교육의 다양한 주체들이 동등한 조합원 자격으로 만난다는 것, 대학원생 문제를 청년 세대의 빈곤화라는 세계적 추세와 연계해 파악한다는 것 등이었다. 구성원들이 ‘고등교육의 상품화’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런 구조 아래에서는 결국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터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교수는 더 피곤해지고, 강사와 대학원생은 더 가난해지며, 교육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교수·강사·학생이 일체가 되어 고등교육에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기자명 홍덕구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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