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보물섬 찾기
  •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 호수 644
  • 승인 2020.01.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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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갈무리고기의 누린내를 없애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육두구.

16세기 초, 바스쿠 다가마와 알바레스 카브랄의 원정으로 인도 서해안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한 포르투갈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해마다 후속 함대를 동쪽으로 파견했다. 이미 진귀한 향신료가 모여드는 집산지인 캘리컷과 스리랑카, 말라카(현 믈라카)를 차지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향신료 중의 향신료로 여겨지며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정향(Clove)과 육두구(Nutmeg)의 원산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두구는 중세 이후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귀족들의 식탁에 올랐다. 자두 크기의 열매에 타원형 씨앗이 들어 있는데, 말리면 그윽하면서도 짙은 향기가 풍겨난다.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각종 육류 요리에 널리 쓰이고 과자류에도 많이 들어간다. 14세기 독일에서는 육두구 1파운드(0.45㎏)로 살찐 황소 일곱 마리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부를 향한 원초적 본능이 예고한 ‘욕망의 피바람’

정향은 육두구보다 더 귀하게 취급되었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선 정향 가격이 육두구의 다섯 배였다. 정향 역시 육류 요리에 이용되며, 중국 요리의 독특한 맛을 내는 ‘오향(五香)’이라는 배합 향신료에도 들어간다. 유럽에서 겨울에 즐겨 마시는 멀드 와인(Mulled Wine. 프랑스어로는 Vin Chaud·뱅쇼)의 향을 내기 위해서도 정향이 사용된다.

이 두 향신료는 모두 말레이 사람들이 한때 ‘바람 아래 땅’이라고 불렀던 몰루카(말루쿠) 제도(현재는 인도네시아 영토)에서 생산된다. 정향과 육두구가 유럽에 소개된 중세 이래, 이들의 원산지는 유럽인들에겐 뱃사람들의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상상의 땅이었다. 이슬람 상인들을 통한 중개무역에 100% 의존해, 향신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았다. 신세계로 향하는 모험가들의 제1 목표 역시 정향과 육두구를 배에 가득 싣고 오는 것이었다. 향신료의 산지를 찾아내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은 유럽의 전제군주라면 누구나 품어볼 만했다. 그런 맥락에서, 포르투갈이 캘리컷과 말라카를 차지한 이후 정향과 육두구의 원산지 탐사를 다음 목표로 설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인도네시아 다도해에는 2만 개가 조금 안 되는 섬들이 있는데, 정확한 숫자는 인도네시아 정부도 모른다고 한다. 자국 섬들의 개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정부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일 정도다. 당연하겠지만, 포르투갈이 동쪽으로 함대를 파견하던 16세기에 이 섬들의 위치가 그려져 있는 유럽의 해도는 하나도 없었다. 원주민들의 이야기에만 의존해, 섬에서 섬으로 탐문을 계속해나갈 따름이었다. 2만 개의 섬 중에서 정향을 생산하는 섬은 고작해야 3개. 이 섬들의 면적을 모두 합해봐야 수십㎡였다. 그나마 육두구는 사정이 좀 나아 9개 섬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바다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항해를 계속해나가도록 만든 것은 찾기만 하면 왕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부를 향한 원초적 본능이었을 것이다.

1511년, 안토니우 드 아브레우가 이끄는 세 척의 소형선으로 이루어진 선단이 포르투갈을 떠났다. 1년간, 섬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배가 난파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은 후 이들은 마침내 몰루카 제도의 테르나테 섬에 도달한다. 이곳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소비된 모든 정향이 생산된 곳이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일주일 항해하면 반다 제도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육두구의 원산지였다. 꿈에 그리던 전설의 땅을 밟았던 항해자들의 기분이야 짐작이 가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보물섬 찾기는 ‘그래서 모두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따위의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없는 향기를 풍기는 열대의 열매와 꽃봉오리를 놓고, 악취가 진동하는 욕망의 피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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