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대표되는 정치권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형사소송법이 통과되더라도 정치권의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치권의 갈등은 거리로, 사회로 확산된다. 거의 매주 거리에서 열리는 집회는 정치권의 갈등을 확대 재생산한다. 정치권은 거리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거리의 갈등을 국가의 갈등으로 확대한다. 갈등의 악순환 구조다.

현대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계급, 계층, 개인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해관계 다툼이 모두 갈등이 되면, 그리고 갈등이 국가·사회·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지금 한국은 이 지점에 와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가 갈등 때문에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공정해야 할 언론도, 정의로워야 할 법조도 예외가 아니다.

불필요한 갈등은 줄여야 한다. 특히 정치권의 과도한 갈등은 불필요하며 유해하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능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불필요한 동작 없애기’다. 정치권도 능률 향상을 위해서 불필요한 갈등을 없애야 한다. 이번 패스트트랙 갈등은 이렇게까지 살벌할 필요가 없었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산안과 선거법,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여당이 주도한 협의체가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이 협의체는 갈등을 줄이면서 법안의 내용을 가다듬고 수정 보완했다.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일부 야당은 반대만 했을 뿐 대화와 타협을 외면했다. 갈등이 높아질수록 대화와 타협은 더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 이외 다른 해결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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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다음 세 가지 명제를 추천하고 싶다. 첫째, 상대방의 실패와 자신의 성공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상대방이 추락하고 실패한다고 해서 내가 고귀해지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내가 고귀해지고 성공하는 것은 오로지 내 행위의 결과일 뿐이다. 상대방의 지위 격하, 추락, 실패는 순간 만족을 주지만 나의 행복을 조금도 높이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명제다.

둘째, 자신의 고난과 이념의 정당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은 고난·어려움을 당하면 그 원인을 찾는다. 대부분 자신이 선택한 결과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잘못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이 가진 이념이 고귀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 요구가 너무 고귀해 탄압을 받고, 국가 수호 이념이 너무 고귀해 고난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농성과 단식은 고난의 정점이며 그 끝에는 순교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이 클수록 이념이 더 정당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 더 큰 고난을 만든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농성, 단식, 삭발을 감행한다. 차분하게 보면 고난과 이념의 정당성 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일 이 명제가 맞는다면 지구에서 가장 많은 탄압을 받는 이란과 북한의 이념이 가장 숭고한 것이 될 터이다. 모든 일에 고난과 희생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명제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셋째,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세상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핵무기가 없어지고 기후가 좋아지며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은 조금씩 바뀔 뿐이다. 진화론이 말하는 이치다. 총선을 치른다고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 어느 한쪽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아마 지금과 비슷한 의석을 차지할 것이다. 자율자동차가 모든 교통사고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교통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인다면 도입할 만하다. 2018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781명이었다. 그 수를 10%라도 줄인다면 자율자동차는 충분히 도입할 가치가 있다. 공수처법도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20년 이상 논의해서 겨우 변화를 만들어냈다. 혁명만큼 중요한 것은 혁명 이전과 이후의 변화다. 점진적인 변화를 겪다 보니 어느덧 혁명적인 변화가 눈앞에 등장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 명제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으려고 대화와 타협을 죄악시하는 이들에게 유용하다.

기자명 김인회 (변호사·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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