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며칠 전 어떤 분이 우리 과 외래로 근골격계 질환 산재 상담 전화예약을 했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우리 몸의 뼈, 근육, 연골 등의 질환으로 업무 때문에 발생하거나 악화되어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하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 환자는 처음에 산재병원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자 했는데, 산재병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관련성 평가 특진 시범사업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연고지 인근 민간병원인 우리 과를 소개했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2년 전부터 건설일용직, 보건의료업, 휴폐업 사업장, 물류 상하차 작업, 조리 종사자 등 일부 업종·직종의 경우에 ‘산재 신청→산재병원의 업무관련성 평가 특진→질병판정위원회 심의’로 이어지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병원에 예약한 환자는 대규모 자동차 제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 시범사업의 대상이 아니다.

업무관련성 평가 시범사업 확대해야

근골격계 질환은 한국에서 업무상 질병의 약 70%를 차지하며, 일하는 사람에게 아주 흔하다. 우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도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과 보상에 관련된 일을 자주 한다. 먼저 법이 사업주로 하여금 취하도록 하고 있는 예방조치인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과정에서 공정 개선 등을 권고한다. 이렇게 질병이 생기기 전에 하는 조치를 1차 예방이라고 한다. 어느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건강 상담 중 1년 정도 된 요통의 악화를 호소했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있었다. 현장에 가보니 작업대가 너무 낮아 허리를 과도하게 숙이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그의 키는 180㎝. 회사 관리자와 상의해서 다른 공정에 배치하고 해당 노동자에게는 요통 예방 체조를 가르쳐주었다. 1년 뒤 다시 만났을 때는 요통이 사라졌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유하도록 하는 것을 2차 예방이라고 한다. 우리가 권고한 조치를 사업주가 이행하고 노동자의 건강이 개선되는 것을 볼 때,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자주 경험할 수가 없다. 대부분은 아플 대로 아파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산재 신청을 한다.

근골격계 질환의 요양과 재활치료를 3차 예방이라 한다. 몇 년 전에 냉장고 제조업체에서 조립업무를 하던 40대 남자가 찾아왔다. 일하다가 넘어져 무릎이 부딪힌 뒤로 아파서 정형외과 병원에 갔더니 연골이 파열되었다고 해 관절내시경 수술을 받았다. 환자는 수십 가지의 조립공정을 순환하면서 무릎을 굽히거나 쪼그리는 작업을 몇 년 동안 했다고 한다. 수십 개 공정에 대해 노사 양측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들여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작성했다. 몇 달이 지나서 진료실로 전화가 왔다. “산재 인정이 되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억울함이 풀렸습니다.” 그때는 마치 착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업무관련성 평가 특진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민간 의료기관 의사가 이렇게 ‘봉사’ 차원에서 대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산재 신청을 하면 아픈 노동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 헤매지 않도록 그 이후의 모든 절차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게 상식적이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은 매우 흔하고 위험직종도 잘 알려져 있으며, 요양이 지연되면 재활 복귀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당연인정기준을 마련하고 기준 이내에 드는 경우는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판단해 적시에 산재 요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복지공단은 현재 ‘산재병원’에서만, ‘일부 노동자’를 대상으로, ‘일부 질환’에 대해, ‘장기간 대기’해야만 업무관련성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 시범사업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사업 제공자의 관점에서 ‘순차적’ 확대가 아니라 수요자의 관점에서 좀 더 빠른 속도로!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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