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해 11월20일 황교안 대표(왼쪽)가 전광훈 목사와 함께 청와대 앞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19년 마지막 밤. 청와대 사랑채 앞에 모인 신도들의 표정은 밝았다. 트럭을 개조한 간이 연단에서 마이크를 쥔 목사가 성경 구절을 외쳤다.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사람들이 화답했다. “아멘!” 목사는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법원에서 오늘 우리 소원을 들어줬습니다. 여기서 계속 예배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함성!” 군중은 더 소리 높여 “할렐루야”라고 외쳤다. 기온은 영하 7℃였다.

이날 집회 분위기가 상기된 까닭은 법원 판결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종로경찰서는 1월4일부터 청와대 주변 집회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박형순 부장판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조건부 유예’를 밝혔을 때와 비슷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님이 이겼다’는 것이다.

이곳 집회는 지난해 10월3일부터 시작됐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주도했다. 전광훈 목사는 욕설과 여성 비하, 신성모독을 일삼은 장본인이다. 2018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과도 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불법·폭력 집회를 연 혐의로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 목사가 결성한 단체 이름은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국본)’이다. 범국본은 매일 저녁 열어온 집회를 ‘예배’라고 주장하지만 목사가 올리는 주제는 언제나 정치 현안이다. ‘공수처법 반대’ 같은 구체적인 것과 ‘공산화 방지’처럼 포괄적인 것으로 나뉠 뿐이다. 문 대통령의 하야·탄핵 주장도 자주 등장한다. 통성 기도(각자 큰 소리로 하는 기도)를 끝으로 집회를 마친 뒤 군중 일부는 그 자리에서 ‘노숙’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전광훈 목사와 범국본을 공공연히 지지해왔다. 1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전 목사가 “아이디어가 많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분”이라고 했다. 황 대표는 지난해 10월26일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문재인 퇴진 철야 국민대회’에서 직접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나경원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적지 않은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참석했다.

황교안의 ‘전광훈 손잡기’는 정치적 자해

교인들의 표를 의식한 행위라고 단정하기만도 어렵다. ‘아스팔트 개신교’는 입지가 단단하지 않다. 교계 인사 대부분은 전광훈 목사나 범국본, 한기총과 선을 긋는다. 이 세력은 개신교 전체는커녕 보수 교계조차 대표하지 않는 소수파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지난해 6월 조사에 따르면 한기총 소속 교단은 전체의 약 18%, 교인 수는 3%쯤이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주류 교단과 대형교회들이 한기총을 떠났다. 남아 있는 교단들 가운데에는 이단·사이비 시비에 휘말린 곳도 있다. ‘전광훈 목사 같은 인물이 회장이 됐다는 것 자체가 한기총의 초라한 위상을 보여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목사가 ‘선’을 넘자 적극 대응하는 곳도 있다. 전통적인 보수 교회로 꼽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난해 11월4일 “그 어떤 단체나 개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교회를 이용하거나 잘못된 주장을 해 교회의 본질적 사명 감당을 혼돈케 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라고 성명을 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문재인 하야 운동을 위해 50만 서명지를 보내왔다”라는 전 목사 발언을 부인하면서다. 개신교계 8개 교단이 만든 ‘이단대책위원장협의회(이대협)’는 지난해 8월 각 교단에 전광훈 목사를 ‘이단 옹호자’로 결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12월19일 이대협은 전 목사에게 “10월22일 집회 발언의 의미와 의도를 답변하라”고 질의서를 보냈다.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발언이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11월27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 농성 중인 청와대 사랑채 앞 몽골텐트 인근에서 장기 집회 중인 ‘범국본’ 회원들.

평신도들도 대부분 전광훈 목사와 범국본을 곱지 않게 본다. 지난해 10월31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이 전국 20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과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응답자 86.6%가 전광훈 목사의 언행에 부정적이었다. 74.4%는 ‘태극기 집회에 기독교인이 참여하는 것은 부정적이다’라고 답했다. 전광훈 목사를 ‘적극 지지’한다는 의견은 3.3%,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봤다는 답변은 2.9%였다. 한기총 소속 교회 신자 비율인 3%와 엇비슷하다.

‘3%’라는 수치만 보면 전광훈 목사와 그 세력의 위험성은 과장된 것 같다. 그들은 교계에서 고립됐다. 대다수 평신도들은 전 목사의 언행을 믿지 않고 집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인파를 모으고 자금을 보탤 대형교회, 주류 교단들도 등을 돌렸다. 전 목사의 언행이 너무 극단적이고 광장에 나온 일부 교인들이 너무 열성적이기에 세가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황교안 대표 등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이 ‘아스팔트 개신교’에 동조하는 것은 정치적 자해에 가깝다. 한기총이 여전히 교계를 대표한다고 착각해서든 전광훈 목사의 종교관에 동조해서든 표를 얻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감을 살 가능성도 있다.

개신교인이 더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편견일까? 앞선 조사에서 기사연은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의 응답을 비교했다. 찬반 의견은 대체로 분포가 비슷했다. 범국본이 집회에서 ‘공산화’라고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 역시 개신교인이라고 특별히 더 반대하지 않았다. 종교인 과세도 개신교인 84.2%가 찬성했다(비개신교인 찬성 응답 92.9%).

다른 종교에 관대한 개신교인도 적지 않다.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나 가르침에도 진리가 있다(동의 58.7%)’ ‘기독교 외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동의 33.1%)’ ‘기독교 외 다른 종교나 가르침은 악하다(부동의 58.4%)’ 등이다. 근본주의 교리도 흔들린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동의 55%)’ ‘구원은 사후 천국에 가는 것이다(동의 58.7%)’ 등 핵심 교리에 동의하는 신자가 60%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의 답이 확연히 갈리는 지점이 있다. 개신교가 오랫동안 적대시해온 진화론·공산주의·동성애·이슬람에 대해 묻자 차이가 보였다. 질문은 ‘개신교가 이들에 대해 어떤 입장이라고 보는지’ ‘본인은 어떻게 보는지’였다(위 〈그림〉 참조). 모든 질문에서 개신교인들의 보수적 답변 비율이 더 높았다.

하지만 일부 교인들은 개신교가 진화론·동성애·이슬람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교리와 신념이 다르다고 밝힌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개신교인 응답자 85.1%는 ‘개신교가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62.3%에 그쳤다. (실제 교리가 어떤지와 별개로) 교리를 알면서도 이탈한 신자들이 있다는 의미다. 진화론과 이슬람 관련 문항도 그랬다. ‘공산주의’ 문항은 양상이 좀 다르다. ‘개신교는 공산주의를 배격한다’고 답한 개신교인은 54.3%로, 4개 현안 답변 중 그 비율이 가장 낮다. ‘나는 공산주의를 배격한다’고 답한 개신교인은 71.2%로 그 비율이 가장 높다. 같은 답변을 한 비개신교인은 58.2%이다.

전광훈 목사의 ‘신성모독 전략’ 통할까

통계를 분석한 신익상 성공회대 교수는 이렇게 썼다. “교리적 확신이 약화하고 있는 근본주의가 고개를 돌린 것은 외부의 적이다.

이 외부의 적은 다른 종교가 아니다. 다름 아닌 시대적 상황 자체다. 2019년 한국 개신교는 내적 확신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근본주의를 지닌 채 다른 종교들의 존재감을 의식하면서 동시대와 싸우고 있다.”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개신교인들이 외부의 적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결속력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주류 교단들이 떠난 한기총이 강경 투쟁에 나설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종교사회학 연구자인 정태식 교수(경북대)는 전광훈 목사의 행보가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기독교 정치세력화는 항상 실패했다. 전 목사는 그 방식이 세련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두 가지 징후를 가리켰다. 우선 향후 한국에서도 ‘기독교 국가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기독교 국가주의는 1980년대 미국에서 정치 우익과 종교 우익이 연합하면서 나온 이념이다. ‘신에게 선택된 강력한 기독교 번영 국가’ ‘새로운 이스라엘’을 내세운다. 기독교보다는 국가주의에 더 가깝다. 전쟁과 정복을 불사하고, 타 종교를 배척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 정 교수는 “기독교는 온 인류의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 종교인데 기독교 국가주의는 ‘우리 집단’의 특수한 이익을 좇는다”라고 말했다. 이 동맹은 최근 실제로 성공을 거뒀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몇몇 복음주의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손을 잡았다. 그들은 트럼프 후보에게 도덕적 흠결이 있어 보이더라도 ‘강력한 미국’을 위해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식 교수는 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 개신교 세력의 발호 가능성도 지적했다. 최근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는 ‘나는 성령을 받았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신도들에게 ‘성령 받아라’라고 권하기도 한다. 교계에서는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하지만 정 교수는 이를 일종의 ‘전략’으로 설명했다. “대중화를 노리는 것이다. 사람이 성령을 받으려면 일종의 그릇(vessel)이 돼야 하고, 그 안을 비워야 한다. 합리적인 사고나 이성의 기능도 빠진다. 골치 아프게 생각 하지 말고 ‘내 말만 들으라’는 것이다.”

1월2일 구속영장 심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전광훈 목사는 “사법 당국이 현명한 판단을 해서 저의 애국운동을 앞으로는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황교안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은 규탄 집회를 해온 종교인에 대해 종교집회를 빌미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라고 썼다. 이날 밤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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