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직면한 ‘이민’ 문제는 시리아 난민만이 아니다. 상당히 비슷한 성격의 다른 이슈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늑대다. 늑대 역시 독일로 이주하고 있다. 밀렵 등을 이유로 독일에서 사실상 멸종됐던 늑대는 통일 직후 폴란드 국경을 통해 유입돼 2000년 첫 새끼를 낳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정부 보호 조치로 2000~2015년에 늑대 개체수가 크게 증가했다. 유럽연합(EU)도 늑대 사냥을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등 늑대를 희귀종으로 분류해 보호하고 있다.
늑대들이 늘면서 양과 같은 가축을 죽이거나, 양치기 개를 습격했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늑대의 가축 공격은 472건이며 이로 인해 양과 염소 1667마리가 죽거나 다쳤다(2017년 기준). 이 같은 피해는 늑대 등 보호종을 사냥할 수 있는 ‘상당한 피해’로 분류되지 않았다. 독일 법원 판례에 따르면 상당한 피해는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국한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 사냥협회(DJV)가 사냥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수렵면허 가진 의원 비율, 일반 국민보다 훨씬 높아
가축 농가에서 시작된 논쟁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연방의회는 2018년부터 늑대 개체수 증가에 따른 대책 마련을 놓고 부심했다. 극우파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중도 우파인 자유민주당(FDP)은 늑대처럼 문제가 되는 동물에 대해 ‘수렵 쿼터’ 이상 사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피해 방지와 보상을 위해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법안도 의회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지난해 2월 연방의회 하원 자연환경 및 핵안전 위원회는 늑대 사냥을 확대하는 ‘늑대 관리 및 감시에 대한 제안’을 부결시켰다. 하지만 지난해 12월19일 연방의회는 연방자연보호법을 개정해 늑대 사냥을 확대했다.
수렵면허가 있거나 사냥에 우호적인 의원들은 대체로 우파다. AfD 의원 다수가 수렵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수렵면허가 있는 연방의회 의원은 약 4.2%(30명 수준)다. 수렵면허를 가진 의원 비율은 일반 국민에 비해 높은 편이다. 법에 따라 총기를 다룰 수 있는 연령대인 18세 이상 인구 중 수렵면허 소지자는 약 0.5%(38만명)다. 독일에서 사냥은 귀족 취미라는 이미지가 있다. 녹색당 의원 67명은 모두 수렵면허가 없다. 기독민주당의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은 수렵면허가 있는 의원이 153명 중 딱 1명이다.
늑대 사냥 확대를 제안했던 자유민주당 크리스티안 린트너 대표는 수렵면허를 따 사냥 연습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녹색당이 ‘사상적으로’ 사냥을 반대해 면허를 땄고, 사냥이 환경을 더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수렵면허는 없지만 늑대 사냥을 가능하게 한 연방자연보호법 개정을 주도했다. 우연의 일치지만, 독일에서 수렵용 총기를 만드는 유명 회사 이름이 ‘메르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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