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2020년은 모두의 인생에서 처음 맞는 새로운 해이지만, 사실 우리는 2019년, 2018년 이즈음과 마찬가지로 살고 있을 것이다. 항상 1월에는 새해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맞추어 뭔가를 해보려고 허둥지둥 사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어 번은 헬스장에 간다는 따위의 계획에 맞게 벌써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시작했을지 모른다. 이미 굳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나태와 관성에 맞서 싸우고 있는 모습 역시 작년 이맘때와 같지 않은가.

이와 달리 우리를 강제하는 작업장, 회사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할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우리는 기계처럼 남들이 부여한 목표에 따라 올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운명을 맞기 때문이다. 이 역시 실은 작년이나 재작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회사에서 주어지는 목표는 당연히 내가 스스로 세운 것보다 나를 더 강제하고, 그 달성 여부에 따라 채찍과 당근이 확실히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작년부터 수립되기 시작했을 2020년 경영계획에 맞추어 부여되는 개인 목표를 향하여, 우리들은 그 과제를 수행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작업장 밖에서 누리는 작은 자유 아래 우리가 개인적 목표를 그나마 세울 수 있을 뿐이므로, 헬스장에서 맞는 새해가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우리는 실제로도 노동 밖에서의 삶을, 주어진 자유의지에 따라 만족스럽게 꾸리고 있는가? 노동 밖 여가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을 취미라 할 수 있다. 누군가 취미를 묻는다면 보통 독서나 영화·음악 감상, 특별한 야외 활동, 스포츠, 문화 활동을 의식적으로 떠올리고 답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남은 시간을 채우는 활동은 텔레비전 시청이다. 노동 밖에서조차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내가 살아가며 보이는 실제 모습은 꿈과 차가운 현실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은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자료가 뒷받침한다. 한국인들이 여가시간에 하는 활동은 주중과 주말 할 것 없이, 압도적인 1위가 텔레비전 시청으로 79.2%(주중), 69.7%(주말)의 비중을 차지했다(‘통계청 2019 사회조사’). 2위가 휴식 활동이고, 3위가 컴퓨터 게임, 인터넷 검색 등이다. 네 번째 여가 활동에서야 비로소 취미, 자기 개발 활동이 등장하는데 우리의 바람과 달리 그 비중은 23.6%에 불과하다(‘자기 개발’ 활동이 ‘여가 활동’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새해 계획을 세우지 말자

현실의 우리에겐, 노동으로 시달리는 주 5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아점’을 먹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겨우 주말 일상을 소파에서 보내는 게 실재라면, 매년 1월1일이 되면 새로운 인생을 살듯 ‘새해 계획’이란 걸 반복적으로 세우는 우리의 모습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실패할 계획이라도 세우면 티끌만큼이나마 우리 일상을 바꿀 수 있기에 장려되어야 하는가? 한 번쯤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떤가. 2020년엔 새해 계획을 아예 세워보지 않기로 하는 결심 말이다. 이미 세운 계획이라도 폐기해버리자. 내가 원래 살고자 했던 노동 밖의 일상을 어색하게 급조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2020년 한 해 정도는 자기 개발과 고급 여가의 틀 밖에서 나를 내버려두는 건 어떨까. 어차피 올해도 작년, 재작년의 내 삶을 반복하고 답습할 수밖에 없다면, 원래의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느긋하게 한 해를 보내자. 여유가 생긴다면 미국의 시인 헨리 롱펠로의 이런 격언을 마음에 새겨보자.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그리고 살아 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기자명 양지훈 (변호사·〈회사 그만두는 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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