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백정 남자 정면 체격 측정’ 사진. 양복 입은 일본인들이 사내 다섯 명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3만8000점에 달하는 유리건판 사진 아카이브를 디지털로 공개했다.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수집한 사진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 1945년 광복까지 방대한 기록물이다. 일제는 이를 두고 철수했고 사진은 신생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소유가 되었다. 오랫동안 수장고에서 잠자던 사진을 1987년부터 인화 작업을 했다. 최근 600만 화소급의 디지털 파일로 공개하기까지 32년이 걸렸다.
이 기록물의 가치는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 사진을 근거로 논문 100편 정도는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조선고적도보〉를 제작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지원하고 세키노 다다시가 주도한 작업이 아카이브의 가장 큰 덩어리를 이룬다. 〈조선고적도보〉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고적 사진과 그림 등 도판을 모은 책이다. 1915년부터 1935년까지 20년에 걸쳐 낙랑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총 15권으로 정리했다. 엄청난 재력과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 작업으로 세키노는 프랑스 학사원상을 받으며 학문적 성과를 공인받게 된다. 하지만 당대에도 지금도 순수한 학문적 노력의 결실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조선 역사의 뿌리를 낙랑과 대방으로 보는 데다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일제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 건판 사진 아카이브에서도 그들의 의도가 읽힌다. 특히 5000점에 달하는 도리이 류조의 인류학적인 사진에서 그런 시각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그가 원산에서 찍었다는 ‘백정 남자 정면 체격 측정’이라는 사진을 보자. 상의를 벗은 사내 다섯 명이 일렬로 앉아 있다. 얼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아마도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선별했을 것이다. 이 사내들은 원시적으로 보인다. 카메라 너머에서 양복을 입은 도리이와 사진사 이노우에 다쓰조나 조수 구로이와 에이지는 자신들이 이들과 다른 인간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진으로 차이를 규정하는 작업을 한 셈이다.

비인간적 사진 찍기와 구별 짓기

19세기 말 유럽에서 사진은 인간을 유형으로 분류하는 데 이용됐다. 지금은 사이비 과학으로 판명된 골상학·인상학 등은 사진에 드러나는 외모를 내면의 성격을 드러내는 기호·약호로 읽으려고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유태인을 골상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믿은 사진가 프랜시스 골턴 등이 있다. 권력은 이를 근거로 사회 내부의 범죄자 등을 찾아내고 격리하려 했다. 범죄자는 원래 이렇게 생겼다는 믿음이 과학으로 유통된 것이다. 이것이 식민지로 이어진다. 식민지 인간은 야만적이기에 교육과 훈육이 필요하다는 식민 지배 논리를 정당화한다. 일제강점기 도리이의 이 사진은 조선에서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부합한다.

비인간적인 사진 찍기와 분류는 100년 전에 사라진 것일까? 지금도 인터넷에서 부유하는 수많은 사진을 보면 차이를 규정하는 작업물이 적지 않다. 노골적인 인종 분류 대신 성소수자 등 우리 안의 다름을 사진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종교적·정치적 공격을 실행한다. 조선총독부 사진에 담긴 시각은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