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민간인 총책이었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45년 7월15일,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서 세계 첫 번째 핵실험을 하며 삼위일체를 뜻하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암호명을 붙였다. 삼위일체라면 보통 기독교 교리를 떠올리게 되지만, 동양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에게 트리니티는 힌두교의 삼주신(三主神)을 뜻했다. 원폭 실험과 창조의 신 브라흐마, 파괴의 신 시바, 유지와 재생의 신 비슈누를 동시에 연관시키기란 상대성이론만큼 난해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탄 개발에 착수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나치 독일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창위의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궁리, 2019)은 일본이 1940년 4월부터 원자탄 개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보기 드문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일본 군부는 원자탄 제조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육군과 해군이 별개로 진행했던 원자탄 개발 연구는 쉽지 않았다. 일본 육군이 원자탄 개발을 의뢰했던 이화학연구소에 제공한 예산은 200만 엔으로 한반도나 일본 각지에서의 우라늄 탐색 비용을 포함해도 2000만 엔을 넘지 않았다. 이는 20억 달러를 쏟아부었던 맨해튼 프로젝트 예산에 비해 턱없이 적다. 나치 군부가 1942년 초 원자탄 개발을 철회하고 V-2 미사일 개발에 열중하게 된 것이나, 일제가 원자탄 개발에 실패한 원인을 들여다보면, 트리니티의 새로운 공식을 알게 된다. 기술·자본·원료.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에는 원자폭탄을 소유한 세계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미국(1945)은 나치 독일과 일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구소련(1949)은 미국과 무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중국(1964)은 미국과 소련에 대비하기 위해, 인도(1974)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아랍 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1979-실제 1979년에 핵무기를 만들었는지, 이스라엘과 미국만 알고 있다)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파키스탄(1998)은 인도와의 국경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2006)은 체제 유지를 위해 원자탄을 만들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핵보유국이 된 영국(1952)과 프랑스(1960)가 당면한 체제 위협이나 분쟁이 없었는데도 강대국이라는 위신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 경우라면, 나머지는 하나같이 적대국과의 극한 대치나 국가 보위라는 궁박한 이유로 핵무장에 나섰다.

5대 핵 강대국(미국·러시아·영국· 프랑스·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네 나라 (인도·이스라엘·파키스탄·북한) 가운데서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사례는 매우 극적이다. 인도가 첫 번째 핵실험을 성공리에 마치자, 세계의 최빈국인 파키스탄은 ‘풀을 뜯더라도 핵무기를 갖겠다’는 목표가 국시가 되었다.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에 30년 동안 관여했던 페로즈 하산 칸 장군의 회고록 제목도 〈풀을 먹으며(Eating Grass)〉다. 그는 이 책에서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의 패배를 거론하며 “두 번 다시 이런 굴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라는 결의가 파키스탄 핵 개발의 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핵실험으로 서구 강대국으로부터 극심한 경제제재를 받았던 인도는 1998년 5월11일과 13일 사이에 무려 다섯 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러자 파키스탄은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한 지 2주일 만인 5월28일과 30일 사이에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해 성공했다. 파키스탄은 인도가 1974년에 했던 첫 번째 핵실험을 포함한 총 여섯 번의 실험에 맞먹는 횟수만큼 핵실험을 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파키스탄이 얼마나 철저하게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나치 독일은 자본이 없었고, 일본은 기술·자본·원료가 다 없었다. 파키스탄도 일제와 다름없었다. 미국과 서구 강대국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인도에 했던 것과 똑같은 강한 제재를 가했다. 파키스탄 대통령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이슬람 국가를 순방해 이스라엘의 핵 개발을 비난하면서 무슬림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설득했고, 중국에 가서는 인도의 위협을 강조했다.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 자금과 원료 지원을 약속했으며, 영토 분쟁으로 인도와 대립하고 있던 중국은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을 전폭 지원했다. 그런데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제재도 풀렸다.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이창위 지음, 궁리 펴냄

북한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파키스탄은 가난한 국가가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핵 개발에 성공한 케이스로 주목된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둔 미국과 중국을 잘 이용한 점은 파키스탄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실례가 되었다.”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충분조건은 트리니티(기술·자본·원료)가 아니다. 나의 처지가 벼랑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생존을 위해 그것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지, 그리고 국제정치를 이용할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송대성의 〈우리도 핵을 갖자-핵 없는 대한민국, 북한의 인질 된다!〉(기파랑, 2016)와 김재엽의 〈한국의 핵무장〉 (살림, 2017)은 북한 비핵화에 실패하고, 미국이 만족할 만한 핵우산을 보장해주지 못하게 되면 한국도 독자적인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에는 있고 한편에는 없는 핵무기는, 없는 편의 양보와 불이익을 의미한다. 송대성과 김재엽의 주장은 당연하지만, 우익 인사들이 주장하는 핵무장론의 문제점은 오로지 북한만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 때문에 핵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한국의 논리를 제어할 수 있는 논리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나오기 힘들므로, 이 논리는 국제사회에서 활용도가 높다. 미국조차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데 필요한 논리적 지렛대일 뿐, 만약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그것이 핵무장을 해야 하는 궁극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형편은 핵 개발에 내몰렸던 다른 나라보다 상황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은 동맹을 지켜주겠다면서 방위비 분담금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금액을 인상한다. 이러느니 차라리 동맹이 아니라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게 속편하다. 또 2019년 6월 초부터 시작된 홍콩의 송환법 사태를 보고 중국에 대한 호의를 거둔 사람들이 많다. 태평양 건너가 아닌 코앞의 패권국가는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독도에 대한 공세가 점점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일본도 감당키 힘들다. 세계사에는 영토 분쟁이 말로만 끝난 사례가 아직 없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