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암호화폐 버블이 세계를 휩쓸었다. 비록 자율적 통제와 규율에 기초해 버블은 꺼졌지만, 그 기본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부나 중앙은행 같은 강력한 통제자의 개입 없이도 시장 참여자의 자율에 의해 통제되는 시장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책이 에릭 포즈너와 글렌 웨일이 공저한 〈래디컬 마켓〉이다. 래디컬이라는 말 그대로, 저자는 시장과 정부 대립하는 두 주체 모두에게 급진적인 방법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데이터 등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한국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부동산을 예로 들어보자. 포즈너와 웨일은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시장에서 불평등을 ‘공동소유 자기 평가세(Common Ownership Self-Assessed Tax·Cost)’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제는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자산 가치를 스스로 책정해서 공시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지불하는데, 만약 그 자산 가치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바로 자산의 소유권을 넘겨야 하는 제도다. 사실 이 제도는 토지에 대해 가장 급진적 관점을 지녔던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와 윌리엄 비크리의 경매를 결합한 방식인데, 토지 소유권을 한 개인이 보유하도록 하는 동시에 그 소유권이 영구히 지대(rent)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경매 제도를 도입했

다. 저자가 이러한 방법을 제안한 이유는 토지 소유권이 한 개인에게 고착화되는 현상을 독점의 또 다른 형태라고 생각해서다. 즉 토지를 비롯한 고정자산에 대해 경매라는 경쟁 방식을 통해 언제든 그 소유권자가 바뀔 수 있다면 고정자산을 이용한 지대 추구도 예방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문제는 이 경우 언제든지 자신의 자산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야 하는 상황이 곧 공유지의 비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산이 타인에게 넘어갈 확률인 이전율과 세율을 동일하게 조정함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중시하는 사람은 이 방식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고, 정부 개입을 중시하는 사람은 이 방식이 정부를 무력화하고 모든 기능을 시장에 넘긴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있다.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에서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는 현재 상황에서 시장과 정부가 지금까지 수행해온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흔들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급진적’ 방법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의 연구를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논리의 엄밀성이 다소간 저하된다는 사실인데, 이는 이 책이 교양서적임을 생각하면 허용 가능한 범위다.

기자명 정재웅 (금융공학 박사·블록체인 핀테크 스타트업 재직)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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