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부엌방 책상 모서리에 올해 읽은 책 중 자꾸 손이 가는 책들이 있다. 한 달만 지나도 새로운 책들로 자리를 바꾸게 되지만 이 책들은 아무 때나 손이 가서 11월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하루의 단상을 던져주는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의 푸가〉 옆에는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가, 그 옆에는 최현숙의 〈작별일기〉가 있다.

28년 만에 시집을 낸 장정일의 〈눈 속의 구조대〉 옆에는 이명희의 〈빈 몸의 경지〉가, 윤진화의 〈모두의 산책〉 옆에는 캐롤 앤 더피의 〈세상의 아내〉가 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 옆에는 수 몽크 키드의 〈날개의 발명〉이 있고, 아직 읽지 못한 이만교의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가 있으며, 부희령의 〈무정 에세이〉 옆에는 한지혜의 〈참 괜찮은 눈이 온다〉가 있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쓸다가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와 베르나르 뷔페의 사진집 사이에서 이 책을 뽑았다.

이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계속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어느 요양보호사의 눈물콧물의 하루’라는 부제처럼 그가 만나는 뮤즈와 제우스의 어느 하루가, 먼 길 떠나는 그들의 마지막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두고 나서는 자식들의 뒷모습이, 아픈 아내가 남편에게 주고 싶은 손수건을 함께 사러 나가는 산책길이 펼쳐진다.

그러다 보면 인천국제공항 31번 게이트에서 번역을 하는 그가 보이기도 하고, 조카네 아이와 함께 살며 어린 동무와 눈을 맞

추는 할머니인 그도 보인다. 매일 만나는 마을버스 기사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고, 감기에 걸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데이케어 가정에 아이와 함께 출근한 그도 그려진다.

그가 기록한 이런 하루들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일본어 번역가가 기록한 요양보호사의 삶?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돌봄에서 길을 찾은 삶? 28년간 쓰기를 멈추지 않은 삶? 우리는 뭔가 전문적으로 잘하는 걸 직업이라고 부르고 그 직업에 따라 분류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잘하는 것’보다 ‘좋은 것(The Good)’이 우선이다. 좋은 것은 분류되지 않고 퍼져 나간다.

모리스 블랑쇼는 “일기를 기록하는 자보다 더 성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28년 동안 쓰기를 멈추지 않은 문학가이다. 이 책에는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으며, 돌봄과 편지로 이어진 그의 문학하는 삶이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좋은 것을 나누는 ‘문학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기자명 하명희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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