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

“기자들에게 물으면 어때요?” 올해의 〈행복한 책꽂이〉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 출판계 관계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많은 매체가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대체로 출판평론가와 서평가 혹은 분야별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도 좋지만 신간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기자들이 잘 알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시사IN〉 기자들은 매주 새로 나온 책을 접하고 신간을 소개한다. 책 담당 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리스트는 다소 편향적이다. 기준은 오로지 기자 개인.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했다. 

 

‘dd를 만난 이후로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와 dd는 양천구 목2동 505번지 B02호에 살았다.’ ‘그 방으로 돌아오다가 dd는 죽었다.’ 중편소설이라고 했는데 너무 빨리 dd가 죽었다. 막 사랑을 시작한 것 같았는데,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는데 곧 죽었다. 그리고 ‘내동댕이쳐진’ d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유는 ‘작가의 말’에 있었다. 작가는 2014년 가을,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 ‘누군가의 죽음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가진 것 중에 무언가가 심각하게 파괴된 것처럼 종래 쓴 소설 중 무언가가 파괴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2014년 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파괴된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소설은 서사와 관계없이 짧은 단상으로도 그 시간을 내어주는 게 충분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디디의 우산〉은 두 가지 모두에서 경이로웠지만 특히 밑줄 그을 만한 표현이 많았다. 가령 상실을 표현하는 이런 말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마음은 턱에 있다고 d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턱이 아팠으니까. d는 종일 입을 다물고 있었고 때때로 피 맛을 느끼고 입을 벌렸으나 아무리 혀로 더듬어도 출혈은 없었고 다만 그때마다, 그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입을, 턱을 세게 다물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d는 세운상가 564호에서 스피커와 앰프를 수리하는 1946년생 여소녀를 만나게 된다. 창고가 되어가고 있는 상가에서 ‘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은 남았고 그럴 수 없는 인간은 떠났다.’ 여소녀는 남았지만 후자 쪽이었다. 택배 일을 하던 d는 여소녀의 수리실에서 전축과 스피커를 만난다. 그럼으로써 dd를 다시 만난다.

〈디디의 우산〉에는 중편소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는 1996년 연세대 사태와 2016년의 광화문광장이 등장한다.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예선전에서 만났다가 1996년 연세대에서 재회한 서수경과 나는 훗날 그날의 고립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정농단과 광화문 촛불집회가 있었다. 소설 안에는 20년째 함께 살고 있는 서수경과 나의 이야기도 있다. 두 여자. 서로의 귀가를 열렬히 반기며 서로의 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감당하기로 약속한 관계다. 그래도 나는 이 생각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없다. ‘서수경이 죽어도 내게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다.’

서늘한 문장마다 밑줄을 치며 〈디디의 우산〉을 읽은 후 어른 됨에 대해, 귀가의 의미에 대해, 죽었을 때 연락이 갈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밤들이 이어졌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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