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

“기자들에게 물으면 어때요?” 올해의 〈행복한 책꽂이〉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 출판계 관계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많은 매체가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대체로 출판평론가와 서평가 혹은 분야별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도 좋지만 신간을 가장 빠르게 접하는 기자들이 잘 알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시사IN〉 기자들은 매주 새로 나온 책을 접하고 신간을 소개한다. 책 담당 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사IN〉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리스트는 다소 편향적이다. 기준은 오로지 기자 개인.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했다. 

 

레이첼 모랜은 진짜 이름이다. 열다섯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7년 동안 성매매 여성으로 살았던 그는 책 표지에 어떤 이름을 쓸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자신의 이름에 파트너의 성을 붙여보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왕의 이름에 ‘두려워하는 용사’라는 뜻을 가진 성을 조합하는 등 이리저리 생각하던 레이첼 모랜은 결국 자신의 실명을 쓰기로 결심한다. ‘가면을 벗는 것이 수치심을 대면하는 나의 방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이첼 모랜은 끊임없이 수치심을 느낀다. 심한 조울증을 겪던 아버지와 조현병을 앓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랜이 ‘성매매된 여성(가난 등으로 별다른 선택지 없이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을 뜻하며, 성매매 여성 이전에 성구매 남성의 존재를 부각시킨다)’으로 지냈던 기간은 7년이고, 이제는 성매매에서 빠져나온 뒤 7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여전히 수치심을 느낀다. 그는 성매매의 본질을 성구매 남성과 성매매 여성 사이의 ‘타락의 상호작용’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성구매 남성은 자신이 일상에서 알고 있는 다른 어떤 여성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할 뒤틀린 성적 욕구를 성매매 여성에게 거리낌 없이 요구함으로써 상대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요구되면 제공되고, 찾으면 충족되고, 제시되면 받아들여진다.’ 성구매 남성은 더욱 왜곡된 욕망을 가지고 다시 성매매 여성을 찾는다. 끊임없이 ‘상호 타락’이 확증되는 과정에서 모랜이 얻은 건 다시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수치심과 절망감이었다.

그는 타락이 단지 성구매 남성과 성매매 여성 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폐쇄적인 비극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정숙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의 역할을 나누는 사회에서는 결국 누구나 잠재적인 ‘그렇지 못한 여성’이 될 수밖에 없다. 모랜은 ‘성매매의 사회적 순기능’을 지지하는 사람들, 성매매를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자발적인 성매매’를 믿기 때문에 시장이 합법적으로 흘러가도록 놔두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책에 서술된 사회적 풍경은 1991~1998년의 아일랜드이지만, 읽다 보면 2019년의 한국 사회와 너무나 비슷해 놀라울 때가 많다. 어쩌면 모랜이 수치심을 느끼는 건 여전히 ‘그렇지 못한(못했던) 여성’에게 수치심을 강요하는 사회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랜은 성매매에서 벗어난 지 2년 뒤인 2000년 더블린시티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성매매와 싸우는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수치심을 느낀다. 왜 수치심은 그만의 몫일까. 레이첼 모랜의 인간적 자존감을 말살하는 ‘타락의 상호작용’의 방아쇠를 당겼던 주체들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구성원의 타락을 묵인했던 사회는 지금 어떤 성찰의 단계까지 와 있을까.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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