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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힘은 혁신에 있다.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는 이 끝없이 새로운 방법의 생산을 찾아내려는 시장 참가자들의 노력에 의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또 시장의 힘은 수긍에 있다. 사람들은 시장가격에 적응 경쟁을 했고, 특별히 독점이라거나 국가의 편애가 없다면 결과에 수긍하는 편이다(정부에 대한 불만과 비교해보라).

시장이 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전환(transformation)’이라는 역사적 격변기에 가격은 널뛰었고 행위자들은 떼로 몰려다니거나 아예 시장을 벗어나려고 했다. 첫 번째 자본주의로의 전환(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나 두 번째 전환(사회주의 국가들의 ‘침체불황’) 모두 국가의 역할은 지대했고 현명한 산업정책을 사용한 발전국가만 순조롭게 전환에 성공했다.

이 두 역사적 사례보다 더 거대한 ‘녹색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1.5℃ 이하에서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즉 티핑포인트에 다다르지 않으려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하고, 2030년까지는 40%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값싼 전기료는 대기업에 ‘독’이 될 것

시장의 힘을 이용하려면 탄소(온실가스) 가격을 대폭 높여야 한다. 마지막 소비 단계의 배출을 줄이려면 전기를 쓰면 된다. 하지만 그 전기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리나라는 발전 부문이 85%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탄소세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석탄발전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낼 것이고 전기료 또한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지난해 8월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가 발표한 국제 비교를 보면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h당 8.47펜스(약 125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2019년 국회 예산정책처의 발표로는 3위). 거대한 유전을 보유하고 수력발전으로 대부분의 전기를 충당하는 노르웨이보다도 낮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7.65펜스(약 113원)로 중간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의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이 아직도 버티는 건 이런 보조금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훨씬 절박한 문제라면 높은 세율의 탄소세를 매길 수밖에 없다. 내셔널 챔피언을 지키겠다고 에너지 가격을 현재 수준에 묶어둔다고 이 산업 부문의 경쟁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거의 다 쫓아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제조업 최강국으로 꼽는 독일과 일본의 산업용 전기료는 우리보다 45%와 65% 더 높다(가정용은 215%와 107%).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은 비싼 에너지 가격을 상쇄하기 위해 기술혁신을 해야 했다. 1000달러의 부가가치당 한국의 에너지 투입은 0.314TOE(석유환산톤)로 독일의 두 배(0.160TOE), 일본의 세 배(0.095TOE)가량 많다. 즉 전기료 인상을 기술혁신으로 돌파할 수 있는 기업만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값싼 전기료로 오히려 기술혁신을 뒤로 미루다가는 우리 대기업은 조만간 모두 사라질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전기료가 높을수록 빨리 달성된다. 적정 가격이 얼마일지는 아직 계산된 바가 없지만 독일 수준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려면 10년 동안 두 배까지 지속적으로 올려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한편 절대적 에너지 투입(가정은 소비)도 줄여야 한다. 예컨대 에너지 효율이 매년 7~8% 향상된다면 10년 동안 100% 전기료 인상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5%씩밖에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나머지 2~3%씩 투입(소비)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모든 정책을 패키지로 만들어서 제시해야 한다. 기업과 국민이 무엇을 해야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는지 손에 잡히는 산업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생태형 발전국가가 필요하다. 어느 정당과 정치인이 2050년 순배출 제로를 선언하고 전기료의 체계적 인상과 순조로운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산업정책을 제시하는가? 그것이 다가올 총선의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어야 한다.

기자명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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