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천재, 영재가 흔한 스포츠나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수학·과학·문학 등 각종 능력치를 시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걸음마 겨우 뗄 무렵부터 용 취급을 받던, 비슷한 연령대의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숨 막히는 눈치 게임. 그 안에서도 최종 승자는 기필코 가려진다.

만약 지금 케이팝 신에서 그 삼엄한 긴장을 단번에 끝내줄 떠오르는 신예 보컬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우주소녀 연정의 이름을 꼽겠다. 국내 걸그룹 최다 인원인 13명으로 구성된 우주소녀에서 연정은 팀의 막내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멤버다.

이 역사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연정이 처음 대중 앞에 선 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프로그램, 엠넷 〈프로듀스 101〉의 첫 시즌이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먼저 우주소녀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데뷔했고, 최종 선발을 통해 기간 한정 그룹 I.O.I의 멤버가 된 연정은 해당 그룹 활동을 마친 뒤에야 우주소녀에 정식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그룹은 둘이지만 연정의 포지션은 변함없었다. 바로 메인 보컬. 사실 연정은 이미 데뷔 전부터 아이돌 연습생들 사이에서 소문난 ‘넘사벽 가창력’의 소유자였다.

연정과 함께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던 구구단의 김나영은 프로그램 인터뷰를 통해 ‘스타쉽에 제2의 효린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를 기억했다. 과연 소문은 허투루 생긴 게 아니었다. 방송 첫 주 63위로 시작한 그의 순위는 6회에서 9위까지 급상승했다. 이 상승세를 이끈 건 온전히 연정의 보컬이 가진 힘이었다. 조별 미션을 통해 선보인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의 클라이맥스에서 연정의 보컬은 그야말로 사이다처럼 터졌다. 전소미·정채연·기희연 등 당시 인기와 화제성 모두를 잡은 멤버가 즐비하던 경쟁 조의 인지도가 무색할 정도였다.

뛰어난 이들을 고르고 골라 남긴 케이팝 신에서도 연정의 보컬은 유독 존재감을 뽐낸다. 타고난 고운 음색은 물론이고 깔끔한 끝음 처리, 진성과 가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탄탄한 발성과 안정된 호흡, 격한 안무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음정까지. 연정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그가 마치 케이팝, 나아가 대중가요를 부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뻗어나가는 보컬에 혹자는 ‘아이돌 팝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편견은 연정의 본격적인 활동과 함께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서 박정현의 ‘꿈에’, 이승철의 ‘서쪽하늘’까지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내는 실력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깊어지는 경쟁자들의 한숨 소리가 이역만리까지 들려오는 기분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1999년생으로 이제 겨우 스무 살이라는 점이다. 연정의 하이노트가 그려내는 경쾌한 포물선, 그가 앞으로 케이팝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서 그려낼 청명한 미래를 닮았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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