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체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
  •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 호수 640
  • 승인 2019.12.26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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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남유별남 작가가 파키스탄에서 촬영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3세 소녀 루비나.

사진가는 촬영하고 있는 대상과의 관계에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의욕은 중요하지만 피사체와 관계가 제대로 성립하지 못하면 도식적인 것 이상의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 촬영이 어려운 것은 대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근접한 거리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뉴욕으로 유학 온 지 일주일 만에 뉴욕 사진센터에서 카메라와 필름을 챙겨 학교로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과 15명 모두를 버스에 태우더니 맨해튼 북쪽의 센트럴할렘이라는 곳에 내려주었다. 인솔자도 없이 3시간 있다가 다시 집합하란다. 황당했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는 마음으로 3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친구들과 그 험하다는 할렘을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

무턱대고 셔터 누르는 건 ‘강간 행위’

학교에 돌아와 그날 작업을 서로 이야기하다가, 노르웨이 출신 잡지 사진기자였던 헬가라는 친구의 말에 머리가 띵해졌다. “너희는 할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라고 생각하느냐? 사람들을 사귀고 깊이 만나볼 생각도 없이 셔터만 눌러대는 건 강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친구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빈민가의 무기력한 흑인이라 해도 소통 없이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대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세바스치앙 사우가두 (세바스찬 살가도)는 촬영 대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바탕을 둔 심층적인 사진 작업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아로 고통받는 에티오피아 난민을 촬영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해서 하루 만에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진기자들과 방송인들의 취재 태도를 지적했다.

한 잡지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사진 철학은 사진가가 촬영 대상에 대해 가져야 할 기본자세를 드러낸다. “밤낮으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고 거의 의사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 무리 없이 아름다운 순간을 잡아낼 수 있다. 때때로 텔레비전 스태프들이 미리 일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급하게 들어와 취재하는 것을 본다. 나는 피사체로부터 무엇인가 배우고 느끼러 온 것이지 피사체를 판단하러 온 것은 아니다.” 사진에 찍히는 대상들은 단순히 피사체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살아 숨 쉬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는 국가나 문화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의 반응은 국가에 따라, 사회적 집단에 따라 판이할 수 있다.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물리적 거리 또한 서양과 동양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광각렌즈를 사용할 경우 상당히 근접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랑과 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카메라가 자칫 폭력적 도구로 바뀌게 된다. 무례한 사진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우가두의 말처럼 촬영 대상의 친구가 되고, 그들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가질 때 진정성 있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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